“나 떨고 있니?”

“아니….”

“그게 겁나. 내가 겁낼까봐.”

“괜찮아.”

1995년이니까 꼭 20년 전이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모래시계>의 마지막 장면. 눈이 퀭하게 들어간 사형수 박태수(최민수)는 친구이자 검사인 강우석(박상원)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물었다. 날고 기던 조직폭력배이자 살인범인 태수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생사의 기로에서 그는 한 올 머리카락보다 쉽게 흔들렸다.

1995년 2월17일자 경향신문은 화제를 뿌리며 종영된 <모래시계>를 다뤘다. <모래시계>는 광주 민주항쟁, 삼청교육대, 정보기관과 폭력조직의 권력게임 등 금기시됐던 소재를 본격적으로 건드렸다. 참신한 소재와 절제된 언어, 탁월한 영상에 매료된 시청자들은 폭풍의 6주를 보냈다. 송지나 작가의 흡인력 있는 스토리와 김종학 PD의 파격적 연출의 힘이었다.


<모래시계>는 ‘귀가시계’가 됐고 방송시간대가 되면 시청자들은 브라운관 앞에 모였다. 직장인 조기귀가로 ‘모래시계 불황’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시청률도 고공행진했다. 최종회 시청률은 64.5%에 달했으며 순간 시청률은 75.4%를 기록했다. 방송 이후 청소년 사이에서는 검도붐이 불었고 연습용 죽도가 불티나게 팔렸다. 주인공들이 낀 놋쇠반지도 유행하고 모래시계도 선물용으로 인기를 끌었다. 서점가에서는 광주 민주항쟁과 삼청교육대 관련 서적이 진열대 상단에 올랐다. 배경음악인 러시아 민요 ‘백학’ 테이프는 50만개 이상 판매됐다.

최민수, 박상원, 고현정, 이정재 등 출연자들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최민수는 ‘고독한 터프가이’로, 이정재는 ‘비련의 보디가드’로 시청자에게 각인됐다. 고현정은 ‘청춘들의 로망’으로 떠올랐다. 광고 출연가는 당시 3억원을 호가했다.

부작용과 역풍도 만만치 않았다. 초등학생 대상으로 ‘장래 희망’을 묻는 설문에 조직폭력배가 1위로 나와 학부모를 당황케 했다. 폭력과 깡패의 세계를 너무 미화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군의 리얼한 민주항쟁 진압 장면에 군 교육책임자가 ‘사기가 떨어진다’며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드라마는 주인공 검사와 실존인물의 유사성 때문에 몰입도가 더욱 높았다. 주인공 검사의 성장 과정은 홍준표 검사(현 경남도지사)와 비슷했고 그는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인생은 소나기를 정통으로 맞기도 하고 비켜나기도 한다. 거대한 산을 넘지만 사소한 돌부리에 넘어지기도 한다. <모래시계>를 만들었던 김종학은 스스로 세상을 등졌고, 홍준표는 ‘성완종 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돈 문제로 올무에 걸렸다. 이젠 태수가 물을 차례다. “너도 떨고 있니?”


박종성 경제에디터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