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도 보도 못한 불이어서 공포감마저 들었다. 휘황찬란한 불빛이 대낮같이 환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1887년 1~3월 사이 어느 날 경복궁에서 전깃불이 켜진 밤의 풍경이다(사진은 경복궁 내 전기발상지 발굴지). 이 광경을 숨어서 지켜봤다는 안 상궁은 이를 ‘불가사의한 불’이라 했다. 바람에 건들거리며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는 전등불을 ‘건달불’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경복궁 전깃불 점등은 1879년 토머스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한 지 불과 8년 만의 일이니 얼마나 신기한가. 고종이 전기에 관한 한 엄청난 ‘얼리어댑터’가 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고종은 임오군란 및 갑신정변 이래 밤에 병란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궁궐 내에 전등을 많이 켜서 새벽까지 훤하게 밝히도록 명했다”(황현의 <매천야록>).

황현의 말대로라면 당시 2만4000달러가 넘는 거액을 들여 전등을 설치한 이유가 흥미롭다. 결국 ‘밤이 무서워서’였던 것이다. 조·미 수호조약 직후 미국을 방문한(1883년) 사절단(조빙사)이 뉴욕의 밤거리를 밝힌 에디슨제 전등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은 것도 계기가 됐다. 사절단의 일원이던 유길준은 “전기가 악마의 불이 아님을 알았다”면서 “조선에도 전기를 사용하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발명왕 에디슨 역시 조선을 남다른 시장으로 여겼다.

‘경복궁의 전등시설은 동양에서 에디슨 제품의 판촉을 위한 모델플랜트로 활용됐다.’

에디슨 회사의 총지배인이었던 프랜시스 업튼이 1887년 4월18일 에디슨 사장에게 보낸 업무연락서의 요약이다. 변란을 우려해서 밤을 환하게 밝히고 싶었던 고종과, 조선을 동양 진출의 교두보로 삼았던 에디슨의 생각이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이 최초의 전깃불은 단명하고 만다. 이때의 전등설비는 경복궁 내 연못을 이용한 증기동력으로 발전했다. 이 때문에 뜨거워진 냉각수가 다시 연못으로 역류되면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다. 그러자 ‘증어망국(蒸魚亡國)’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게다가 전기설비를 맡았던 미국인 기사 월리엄 매케이가 오발사고로 사망한다. 매우 상징적인 이야기다. 꺼져가는 왕국의 불을 되살리려 궁궐을 밝혔지만 끝내 나라의 운명을 되살리지 못한 이야기가 아닌가. 궁궐에 불을 켠 지 불과 23년 만인 1910년 조선의 불이 꺼졌으니 말이다.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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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