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환관 위충현(?~1627)의 세도는 황제(희종)를 능가했다. 황제의 권력서열이 위충현과 그의 내연녀(곽씨) 다음인 ‘넘버 3’라는 말이 나돌았다. 그러나 위충현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성역이 있었다. ‘만세(萬歲)’ 구호였다. 그래서 고심 끝에 ‘구천세(九千歲)’를 생각해냈다. 위충현이 거리를 지날 때면 ‘구천세’ 연호가 나왔다. 아부꾼들은 ‘구천구백세’까지 높여 불렀다. 그래도 황제의 존엄을 상징하는 ‘만세’ 구호는 언감생심이었던 것이다.(사진은 ‘만세’를 새긴 서진시대 동전) 조선과 같은 제후국 군주에게는 ‘천세’의 구호만 허용됐다.

만세가 황제의 전유물이 되기 시작한 것은 한 무제 때이다. 기원전 109년 숭산(嵩山)에 오른 무제는 어렴풋이 ‘만세삼창’ 소리를 들었다. 산신(山神)이 지른 소리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무제는 15년 뒤인 기원전 94년에도 역시 만세 소리를 들었다. 무제는 “산신령도 나를 보고 ‘만세’라 하는데 너희는 왜 날 만세라 부르지 않느냐”고 질타했다. 이때부터 문무백관과 백성들은 황제 앞에서 ‘만세’를 연호했다. 그러나 당나라 때까지는 완전한 성역은 아니었다. 후한 황제인 화제(88~106)의 동생 중에 ‘유만세’가 있고, 당나라 때까지 이만세, 사만세, 조만세라는 이름도 등장한다. 그러나 북송의 충신 구준(961~1023)은 어떤 정신병자가 구준의 면전에서 만세를 불렀다는 이유로 유배형을 감수해야 했다. 비슷한 시기 인물인 조예는 술에만 취하면 “내 앞에서 만세를 연호하라”고 술주정했다는 죄목으로 장형을 받고 죽었다. 북송 이후 만세는 황제 이외에는 범접할 수 없는 금기어가 된 것이다. ‘만(천)세 삼창’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1418년 세종이 아버지(태종)를 상왕으로 올리는 의식을 펼칠 때 ‘천세삼창’의 요령을 제시한다. 즉 사회자(통찬)가 몸을 굽혀 세 번 발을 구르고 꿇어앉아 ‘천세, 천세, 천천세’를 부르면 관원들도 꿇어앉아 ‘천세’ 삼창을 한다는 것이다.



최근 북한의 제7차 노동당대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연설이 끝나자 만세가 12번 터졌다고 한다. 세습정권임을 감안하더라도 삼창도 아니고 12창이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우선 든다. 궁금증이 남는다. 과연 진심에서 우러나온 만세였을까. 전국시대 제나라 공자인 맹상군은 백성들로부터 진심의 ‘만세삼창’을 선물 받았다. 가난한 백성들의 빚을 모조리 탕감해줬기 때문이었다. 백성의 가려움을 긁어주는 지도자라야 ‘만세’가 절로 터져나온다.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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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