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폐막된 제17회 전주영화제 무대에서 뉴스와 빛의 중심에 선 사람이 있다. 다큐멘터리 <자백>을 출품한 독립언론 뉴스타파의 최승호 PD(55)다. 국가정보원의 유우성씨(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을 3년간 추적해 그린 <자백>은 올해 신설된 다큐멘터리상과 넷팩(NETPAC·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을 받았다. 2관왕을 거머쥔 영화엔 “저널리즘 영화의 진수”라는 심사평이 따랐다. 입맛대로 여동생의 자백과 공문서를 조작한 국정원을 고발하고, 30~40년 전 간첩의 멍에를 쓴 피해자들의 고된 현실을 비추고, ‘권력자(김기춘·원세훈)’를 찾아 “왜 그랬느냐”고 마이크 앞에 세운 화제작이었다. 그는 김진혁 감독이 출품한 다큐멘터리 <7년-그들이 없는 언론>에선 해고된 언론노동자의 한 사람으로도 그려졌다. 김 감독도 EBS PD 출신이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는 경향신문 칼럼에 “언론이 건강했으면 굳이 극장까지 오지 않았어도 될 작품”이라고 <자백>과 <7년…>을 묘사했다. 219개 극장의 매진 신기록이 세워진 전주영화제는 “표현의 자유가 만발한 무대”로 기록됐다. 최 PD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민주주의와 권력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는 수상소감을 남겼다. 영화감독 데뷔와 수상은 낯설지만 응어리를 푸는, 나름 유쾌한 나들이였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탐사보도를 하겠다고 말한 첫 번째 PD”였다. 그 꿈은 여행 프로그램과 <경찰청 사람들>을 만들다 MBC 입사 10년째인 1995년 <PD수첩>에 합류하며 시작됐다. 2005년 11월22일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 보도는 큰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줄기세포 논문이 조작됐다는 탐사보도는 ‘광고 중단→취재윤리 논란→사이언스 진상조사 착수→황 교수 시인→서울대 논문조작 판정’으로 이어지며 두 달간 세상을 발칵 뒤집었다. 앵커와 CP로 보도를 지휘한 최 PD는 당시 이 문제로 소집된 언론노조 회의에 나와 “끝까지 믿고 지켜야 할 것은 팩트”라고 말했다. 상기됐던 11년 전 그의 얼굴과 아직 진실이 뭔지 몰라 말을 머뭇거린 참석자들이 떠오른다. 그해 12월21일 경향신문 1면엔 “최대의 반전드라마였다”며 ‘2005 얼굴-PD수첩 최승호·한학수’를 선정한 기사(사진)가 실렸다. ‘환호에 묻힌 진실을 캐다’라는 제목이 달렸다. 이 사건을 다룬 영화 <제보자>의 실제 인물(닥터K)인 류영준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훗날 <PD수첩> 15주년 특집방송(2005년 5월31일)에서 나온 짧은 코멘트가 자신을 움직였다고 말했다. “능력이 모자라서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 적은 많았지만, 압력 때문에 피해간 적은 없다”는 최 PD의 맺음말이었다.

2010년 <검사와 스폰서> <4대강 수심 6m의 비밀>, 2011년 <공정사회와 낙하산>도 성역을 깬 그의 화제작이다. 하지만 PD저널리즘의 정점에 섰던 그는 지금 해고노동자다. 2012년 “공정방송”을 요구한 파업 중에 해고된 ‘평조합원’은 1·2심 승소 후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최승호는) 증거 없이 해고시켰다”는 백종문 MBC 미래전략본부장의 녹취록도 까졌다. 올가을 <자백>이 상영되기 전 그에게 덧씌워진 ‘해고자’ 올가미도 벗겨질 수 있을까.


이기수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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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