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다스리든, 회사를 운영하든, 아니면 집안 살림을 하든 가장 중요한 것이 인사(人事)다. 지도자 한 사람이 모든 일을 할 수 없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을 도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성인들은 곡목구곡목(曲木求曲木)이나 무사인사(無私人事), 그리고 부득이(不得已) 같은 고사성어를 통해 공정하고 적절한 인사의 원칙을 강조했다.


민주화 이후 국민들은 독재정권하에서의 학연, 지연 등 친소관계에 의한 인사제도의 개혁을 희망했다.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공정한 인사를 통해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는 바람이었다. 독재정부의 특징 중 하나는 인사 전횡이기 때문이다. 독재정부 시절 어떠한 인사과정도 투명하지 않았다. 쿠데타 직후에는 공정한 것처럼 보였다.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정권을 잡게 된 지도자들은 모든 분야에서 준비가 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각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가들을 등용해야만 했다. 5·16 쿠데타 직후 군사정부는 민주공화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 각 지역에 있는 전문가들을 발굴했다. 발굴된 인사들은 쿠데타의 주체들과 과거 어떤 개인적 인연도 없었다. 예춘호는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그러나 민주공화당은 총선에서 3·15 부정선거를 주도하고 4·19혁명으로 무너진 자유당 정부에 참여했던 인사 28명(전체 162명 중 17%)을 공천했다.


1963년 8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육군대장으로 전역한 후 민주공화당 입당원서에 서명하고 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학연과 지연, 충성도 중심으로 군대와 경찰 인사를 단행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전문성이 필요한 부문에는 해당 분야에 뛰어난 능력과 경력을 갖추고 있는 김정렴이나 김학렬 같은 인사들이 등용됐다. 쿠데타 이전에는 박정희와 아무런 인연도 없었던 박희범이나 정부의 경제정책에 비판적이었던 변형윤도 경제정책 입안, 검증 과정에 초대됐다. 그러나 권위주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권력기관으로서 검찰과 중앙정보부, 군대와 경찰의 인사는 달랐다. 학연과 지연과 인연, 충성도가 인사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었다. 인사검증도 없었다. 쿠데타 후 10년이 지나면서 이런 경향은 전 분야로 확대됐다.


두 번째 쿠데타에 의해 집권한 신군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김재익과 같은 경제전문가들이 필요했다. 그러나 정치권과 고위직은 육사와 법대 출신들로 채워졌다. 여당이었던 민주공화당은 ‘육법당’이라고 지칭됐다. 1960년대부터 1987년 민주화 이전까지 주요 보직을 특정 지역 출신들이 독점했다.


민주화는 이런 불투명하고 불공정하며, 차별적인 인사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요구이기도 했다. 이를 위해 만든 것이 인사청문회 제도다. 특정 지위에 특정 인사를 지명하는 것은 인사권자의 고유권한이지만, 해당 인사의 자격과 능력을 검증해 인사제도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러나 민주적 헌법에 따른 대통령 직선제는 또 다른 폐단을 만들어냈다. 민주적인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는 후보자들에게는 자신의 선거 공약과 선거 후의 정책을 만들어줄 참모가 필요했다. 선거 참모들은 캠프를 만들었다. 문제는 정권을 잡은 이후 캠프에 참여했던 사람들만 인사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지도자의 생각을 가장 잘 이해하고, 선거 과정에서 지도자에게 특정 정책 제안을 했으며, 지도자와 가장 많이 만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인사권자로서는 주요 직위일수록 캠프에 참여한 인물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거 과정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참모들에 대한 검증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선거 캠프의 인사들을 중심으로 인사가 이루어지다보니 다양한 신조어들이 생겼다. ‘문고리 인사’, ‘회전문 인사’가 대표적 예이다. 학연, 지연을 넘어 종교연까지 나타났다. 선거 때면 교육과 연구는 팽개치고 캠프 주변을 어른거리는 교수들도 많았다. 지도자들은 선거 과정에서 공정한 인사를 약속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연일 뉴스의 중심에는 인사 문제가 있다. 공정한 인사가 이루어진다고 한들 그 인사가 공정하다고 믿겠는가? 인사가 이루어지면, 대상자가 해당 분야의 전문가인가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과정을 거쳐 인사권자와 가깝게 됐는가가 더 궁금한 세상이 됐다. 전문성을 검증하지 않는 청문회를 비판하기 전에 청문회가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됐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민주화 이후 30년이 됐건만 인사문제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가 들정도로 민주화 이후에도 독재시대 인사제도의 폐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큰 성취를 지키기 위해 또 다른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 시작은 인사제도의 혁신이 될 것이다. 2017년의 대사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선거 캠프와 인사제도의 개혁은 미래 한국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한국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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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