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러줄 거야. 네 남편한테…. 건넌집 김서방 불러내…수군수군 말하다 … 삼밭으로 들어가 … 잔삼은 쓰러지고 … 굵은 삼대 끝 남아 우줄우줄 하더라고…. 내 꼭 이를 거야. 네 남편한데….” 유부녀의 불륜행각을 남편한테 고자질하겠다는 협박인데, 저 생생한 표현을 보라. 김천택의 <청구영언> ‘만횡청류’에 등장하는 노래이다. ‘약간 높은 음으로 흥청흥청 부른다’는 뜻의 만횡청류는 농밀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는 노래다.

 

“들입다 바드득 안으니 … 가는 허리 자늑자늑 빨간 치마 걷어올리고….”(사진) “반여든에 처음 계집질하니 … 흔들흔들 이 재미 알았던들…” 하는 의성어·의태어가 난무하는 노랫말이 적지 않다. 짝사랑 총각의 불타는 마음을 표현한 노래도 있다. “각시네 옥 같은 가슴팍을 좀 대어볼 수 있을까. … (여인의) 저고리 깁적삼 안섶이 되어 쫀득쫀득 대어보고 싶다”고 애를 태운다. 어떤 남성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네 부모가 널 만들어 줄 때는 나만 사랑하라 하신 거야”라고 속삭인다.

 

사실 <청구영언> 하면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 같은 고고한 노랫말이 떠오른다. <청구영언>이 편찬된 1728년(영조 4년)에도 ‘만횡청류’는 음탕한 노래라 지탄 받았다. 그러나 김천택은 ‘19금 노래’를 무더기로 포함시키면서 종실인 이정섭에게 슬그머니 감수를 부탁한다. “이 책엔 상스럽고 외설스러운 가사가 있는데… 어떠신가요.” 이정섭의 대답도 걸작이다. “세상엔 선한 음악도 있고, 악한 음악도 있는 것 아니오. 괜찮소.” 이정섭은 “음악을 들으며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도 나름대로 가치 있다”고 했다. 창작과 감상의 자유를 이야기한 것이다. 김천택이 고심 끝에 남녀상열지사인 만횡청류를 수록한 이유가 있다. “음탕하고 본받을 만한 가치는 없지만 오래된 노래라 폐기할 수 없다”(<청구영언> ‘서’)는 것이다. ‘저속한 노래’라 비판받지만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노래라면 무시할 수 없다는 게 김천택의 지론이었다.

 

지금 서울 용산의 국립한글박물관이 ‘청구영언’ 특별전을 열고 있다. 왠지 ‘19금’ 전시실에 눈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중에 ‘라임’ 넘치는 노래 하나가 자꾸 입에서 맴돈다. “오늘도 날 저물었네. 저물면 샐 것이고, 밤이 새면 이 님 갈 것이고, 님이 가면 못 볼 것이고, 못 보면 그리워할 것이고, 그리워하면 병들 것이고, 병이 들면 못살 것이니, 병들어 못 살 줄 알면 자고 가는 게 어때?”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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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