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어느 날 국립중앙박물관에 한 골동품상이 찾아와 녹슨 청동제품을 내밀었다. 밑부분이 부러져 나갔고, 그나마 남아 있는 윗부분마저 둘로 절단돼 있었다. 게다가 출토지가 명확하지 않았다. 그래도 당시에는 보기 드문 기원전 4~3세기 청동유물이어서 싼값에 구입했다. 그런데 녹을 벗겨내자 반전이 일어났다. 놀라운 무늬가 보였다.

 

두 개의 Y자형 무늬 끝에 새 한 쌍씩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솟대’가 떠올랐다.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로서 나무와 새가 아닐까. 다른 면에서는 항아리에 곡식을 담고 있는 여성과 괭이를 치켜든 인물이 보였다. 더 놀라운 그림이 보였다. 벌건 대낮에 떡하니 성기를 노출한 채 따비(쟁기)로 밭을 가는 남성상이었다. 뒷머리엔 긴 깃털장식을 뽐내면서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고 밭을 가는 남성…. 요즘 같으면 ‘변태’ 소리 듣기 딱 좋은 모습이다. 하지만 민속학 측면에서는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함경도 종성에 유배 중이던 조선 중기 문인 유희춘(1513~1577)은 ‘해괴한 풍습 하나’를 소개하며 개탄한다. “해마다 입춘날에 나체남자를 시켜 나무소(木牛)를 몰아 밭을 가는 장면을 연출한다.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라는데, 생사람을 부들부들 추위에 떨게 하는 이 무지한 풍습을 어찌할 것인가.”(<미암집>) 청동기시대부터 조선 중기까지 이어진 ‘알몸 밭갈이’ 행사였음을 알 수 있다. ‘×심이 땅심’이라는 표현도 있듯이 민속학의 관점에서 풍년과 다산을 기원하는 알몸 밭갈이 퍼포먼스를 해마다 펼쳤음을 알 수 있다. 민속학자 김열규는 더 구체적인 해석을 가한다. 퍼포먼스는 신화가 서려 있는 주술이라는 것이다. 즉 남성인물상의 성기와 따비는 나란히 땅을 향해 뻗어 있는데, 이것은 여성으로 간주된 대지의 여신과의 성관계를 암시한다는 것이다.

 

최근 문화재청은 입수된 지 47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 농경문청동기를 보물(제1823호)로 지정했다. 왜 이제야 보물지정이냐는 궁금증이 든다. 수십 년간 박물관 수장고에 잘 있었으니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는 답이 돌아온다. 어쨌든 이참에 농경문청동기에 새겨진 그림을 꼼꼼히 살펴보게 된다. 마침 국립중앙박물관이 문화재청과 공동으로 최근에 농경문청동기와 함께 국보·보물로 지정된 유물 50건을 특별전시(5월13일~7월9일)한다니 꼭 한번 가봐야겠다.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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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