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아마도 일종의 직업병 탓이리라. 필자 눈에는 요 몇 해 동안의 한국이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 어느 시기의 조선처럼 보인다. 그 시기에 조선은 첫 번째 조선에서 두 번째 조선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산통을 겪었다.

 

건국(1392) 이후 약 두 세대 동안 조선의 중앙권력은 엄청난 성취를 이뤄냈다. 그 한가운데에 빛나는 세종 시대가 있다. 기간산업인 농업에서 이룬 높은 경제 발전으로 민생이 안정되고, 세금과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국가제도가 정비되었다. 훈민정음으로 대표되는 문화적 성취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을 관통했던 이념이 성리학이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민주주의를 최고의 사회적 가치 기준으로 삼아 사회제도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놀라운 성취에 가려서 주목되지 않지만 15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두 가지 상반된 현상이 나타났다. 앞 시대의 성취가 가져온 결과물이다. 하나는 기득권층이 형성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리학을 내면화한 새로운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그들은 국가 주도 성리학이 가장 강조한 가치인 ‘충’(忠)을 내면화했다. 민주주의 교육을 받으며 1980년대에 대학에 대규모로 진학한 ‘86세대’가 민주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충’의 의미이다. 세종 시대 이래 ‘충’은 단순히 왕에게 복종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았다. 오히려 왕이 잘못된 결정을 하면 목숨을 걸고 발언하는 것까지 ‘충’으로 이해되었다. ‘86세대’가 주장했던 것도 결국은 민주주의였다.

 

그즈음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사육신 사건’(1456)이 그것이다. 기득권층을 대표하는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이 된 것에 대한 저항 사건이다. 죽은 6명은 희생자 전체로 보면 빙산의 일각이다. 더 심각한 것은 그 사건 자체의 의미이다. 수양대군과 그 지지 세력이 저지른 일은 시대 흐름에 정확히 반대되는 정치적 반동이다. 건국 이래 조선이 공들여 키워놓은 세대는 교육 받은 대로 세조 정권에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흥미롭게도 세조 정권 측에 속한 인물들조차 공적으로는 자기들 행위를 정당화하지 못했다. 그들이 교육받은 성리학의 가치로는 그것이 애초에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사육신 사건 이후 관리가 되기를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부정한 권력에 고개 숙이고 관리가 되는 것은 ‘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계기로 사회적 존재로서 관리와 지식인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조선 건국 이후 처음 나타난 일이다. 이렇게 관리가 되기를 자발적으로 포기한 재야지식인들을 당시에 ‘처사’라 불렀다. 퇴행적 국가권력 울타리 밖에 등장한 새로운 사회적 존재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아졌다. 당시에 그들은 사회적으로 의로운 존재로 여겨졌다. 그것은 기성의 국가권력이 아닌 사회가 부여한 새로운 종류의 명예였다.

 

여기저기 나타나기 시작한 처사형 지식인들은 학문의 본령이 무엇이고, 그 사회적 실천이 어떠해야 하는지 자문했다. 그때까지 학문은 유학 경전을 외우고, 글짓기를 연마하여 과거시험에 붙어서 관리가 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 틀에서는 과거시험에 빨리 그리고 높은 등수로 붙은 사람들이 우수한 인재로 여겨졌다. 새로운 학문이 만들어내기 시작한 성리학의 내용은 전혀 달랐다. 앎에 그치는 것이 아닌 실천을 위한 지식,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강요된 지식이 아닌 개인 간의 일상적이고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는 지식이었다. 새로운 성리학은 개인적 삶의 지침이 될 수 있는 바른 원칙과 방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의 성리학이 바로 이 시기에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제까지 한국의 민주주의는 개인보다는 국민이 그 대상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정부는 전체로서의 ‘국민’에 대해서는 존중하는 듯하면서도 정작 국민 하나하나인 ‘개인’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우리가 각자의 의견과 권리를 무의식적으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주장하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러한 민주주의가 새로운 단계를 맞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중심에 개인으로서의 인권 문제가 있다.

 

인권은 달리 말하자면 개인화되고 인격화된 민주주의이다. 인격화된 민주주의의 내용은 그것을 내면화한 사람에게는 이념이 아닌 ‘상식’으로 이해된다. 이번 정부가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말하는 것은 이러한 우리나라 민주주의 자체에 나타난 새로운 흐름을 파악한 결과일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두 번째 조선이 등장하는 과정에서 진통을 겪었다. 그 축소판이 성리학 자체의 분화와 갈등이다. 하지만 제도로서의 성리학과, 상식으로 내면화되고 인격화된 성리학이 원리적으로 대립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전자가 성리학의 거시적 제도적 모습이라면 후자는 그 미시적 기초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이 장기 지속된 중요한 원인은 조선 성리학의 두 측면이 장기적으로 갈등을 극복하고 마침내 조화를 이루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정철 한국국학진흥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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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