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의 원형이 ‘절임채소’라 한다면 동양의 성인인 공자도 김치를 먹었다고 할 수 있다. 공자는 ‘롤모델’인 주 문왕이 창포저(昌蒲菹·창포로 만든 절임채소)를 좋아했다는 말을 듣고는 미간을 찡그려가며 ‘창포저 먹기’에 도전했다. 그러나 얼마나 시었는지 3년이 지나서야 익숙해졌다(<여씨춘추>). 중국의 김치는 공자마저도 3년이 지나서야 겨우 적응할 정도로 신맛이 강했다. 주로 초산발효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분을 분해하는 젖산발효로 만들어진 우리네 김치는 은은하고 달콤한 신맛을 낸다.

 

 

한반도의 김치가 기층문화로 자리 잡은 이유이다. 오죽하면 임금(광해군)에게 김치를 바쳐 재상에 오른 아첨꾼들을 일러 ‘침채재상(沈菜政丞)’이라는 세간의 비아냥이 나왔겠는가. 김장문화의 첫 기록은 이규보(1168~1241)의 시(‘가포육영’)를 꼽을 수 있다.

 

“제철 무에 장을 곁들이면 한여름에 먹기 좋고, 소금에 절이면 긴 겨울을 난다”는 것이다. 여말선초의 권근(1352~1409)은 “맛있게 김장 담그니… 진수성찬 없이도 입맛 절로 난다”(‘김장·蓄菜’)는 군침 도는 시를 남겼다. 통배추가 김치재료로 폭넓게 애용된 것도 200년이 채 안된다. 물론 조선 전기 서거정(1420~1488)의 시(‘촌주팔영’)에 ‘늦가을 배추향기 솔솔 불자 항아리에 김치 담가…’라는 내용의 ‘배추김치(숭제)’ 시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서거정의 시에 등장하는 ‘숭제(숭제)’가 진짜로 배추김치인지, 아니면 배추나물인지 설이 분분하다. 지금처럼 속이 꽉 찬 통배추 씨는 1800년대 중반 조선 토질에서 안정적으로 자라기 시작했다. 조선 후기 심상규(1766~1838)의 시(‘잡영추고’)에 비로소 ‘가을배추 살쪄 희고 연한 것이 비계 같고, 주름진 금색에 넓은 빛 운운’하는 내용이 나온다. ‘임진왜란 전후’에 유입된 고추가 김치양념으로 사용된 첫 기록은 이서우(1633~1709)의 시(‘끽채’)이다. “고추를 항아리 속 채소와 넣으니 김치가 맛있다”는 것이다.

 

최근 세계김치연구소 박채린 박사 등의 연구는 김치의 매력을 가미시킨 젓갈의 사용 시기를 15~16세기로 ‘확정’했다. 음식조리서 <주초침저방>(사진)에 등장하는 세 글자 병서자(‘ㅴ’와 ‘ㅵ’)가 15~16세기 표기법이라는 것이다. 그 안에 곤쟁이젓과 새우젓 김치의 레시피가 포함돼 있다. 바야흐로 김장철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밥에 빨간 양념을 버무린 김칫소, 그리고 운 좋으면 삶은 돼지고기 수육을 얹어 먹을 수 있었던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른다.

 

<이기환 논설위원>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