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도 지나고 이제 곧 새해다. 많은 것이 그렇듯 나이 먹는 것에도 좋은 면과 나쁜 면이 있는 것 같다. 나쁜 면은 즉각적일 뿐 아니라 일부러 의식하지 않아도 느끼게 된다. 여러 가지 걱정이 많아지고 이런저런 이유로 병원에도 더 자주 간다. 비로소 내가 사용 기한이 있는 신체에 의지해 살아가는 존재임을,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

 

반면에 좋은 것은 간접적으로만 얻을 수 있다. 그것은 가령 ‘걱정스러운’ ‘이해하기 어려운’, 가끔씩은 ‘실망스러운’ 젊은이들을 볼 때 마주치게 되는 경험이 계기가 된다. 따옴표 안 단어들은 대개 나이 먹은 사람이 자기 경험에 따라 젊은이들을 볼 때 갖는 생각이다. 많은 경우에 그 생각들은 일면적이다. 그런 일면성을 노력해서 넘어서야 한다는 점에서 간접적이다. 그런데 그것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고, 힘들여서 꼭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세대차는 그래서 생기리라. 우리는 나이가 지혜를 더하길 바라지만, 실제로는 완고함만 늘리는 경우가 더 많아 보인다. 비유컨대 전자가 숙성이나 발효현상이라면 후자는 부패현상이라 할 수 있다. 화학적으로만 보면 둘은 별로 다르지 않다.

 

‘역사’를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겠지만, 옛 사람의 경험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밋밋하긴 해도 큰 무리 없이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조금만 더 따지고들면 복잡해진다. 우선 인간 경험의 다양한 내용들의 변화 속도가 저마다 다르다.

 

대체로 정치적인 것들의 속도가 제일 빠르고, 경제적인 것들은 그보다 느리고, 법과 제도의 변화는 그보다 더 느린 경우가 많다. 사람들의 생각이나 사회문화적인 것, 예를 들면 ‘건전한 상식’이나 ‘미풍양속’ 같은 것의 변화는 아주 느리다.

 

역사를 이해하려 할 때 흔히 범하는 실수 중 하나는, 설명하려는 시간 범위를 너무 크게 잡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역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도 그 혐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예를 들어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에서 1910년 대한제국 패망의 징조와 원인을 찾는 경우가 있다. 임진왜란에서 정부와 사회지도층이 보여준 무책임과 무능이 결국 나라의 패망을 불렀다는 식이다. 두 사건 사이에 놓인 약 10세대를 ‘패싱’한 논리다.

 

시기를 조금 내려서 임진왜란을 한 세대 뒤 병자호란으로 바꾸어도 내용은 다르지 않다. 우리는 자기 세대 경험이 이전 모든 시간의 그것과 등가물이거나 더 진실한 듯이 여길 때가 적지 않다. 물론, 전혀 그렇지 않다. 누구나 제한된 시공간에서 얻은 경험과 생각으로 살다가 갈 뿐이다.

 

아마도 과거에 대한 우리의 이해나 설명이 생기를 띠기에 적절한 시간 단위는 ‘세대’ 정도일 것이다. 탁월한 개인의 생각과 행동도 대개는 자기 세대의 제약을 받는다. 예를 들어 이황과 이이가 보여준 모습이 그렇다. 이황은 이이보다 36세 더 나이가 많았는데, 그것은 단순한 나이차가 아니다. 이황은 사화(士禍)를 경험했고, 이이는 겪지 않았다.

 

이황은 19살 때 기묘사화(1519)를 경험했고, 이후 이어진 사화에서 작은형이 목숨을 잃었다. 그에게 조정은 위험하고 피하고 싶은 곳이었다. 그가 조정에 있을 때 자주 낙향하려 했던 이유가 단순히 학문에 대한 열정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마음 깊이 자리 잡은 정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을사사화(1545)는 이이가 열 살일 때 일어났지만 그와는 무관했다. 그는 사림이 정치권력을 획득하기 직전에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당연히 그도 사건으로서의 사화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앎의 밀도는 이황의 그것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황에게 사화가 온몸으로 전해지는 것이라면 이이에게는 머릿속에 머무는 추상적인 것이었다. 이이와 그의 세대에게 정치는 자신들의 학문적 이상을 현실화할 수 있는 공간이자 도구였다.

 

60대 중반의 이황과 30대 초반의 이이 세대에게, 선조 즉위로 펼쳐진 똑같은 정치적 공간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선조 즉위로 정치세력의 기본 축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사실은 오늘날 우리들 눈에나 분명할 뿐이다. 중종과 명종 대를 살았던 이황 같은 사람들에게 선조 초는 유동적인 하나의 국면으로 보였으리라. 실제로 중종에서 명종까지 50년 내내 정치적 암흑시기가 계속되지는 않았다. 조광조가 활약했던 수년간, 중종 말년의 수년, 인종의 짧은 재위기간은 일종의 ‘한양의 봄’과 같은 시기였다. 그러다가는 곧 사화들이 이어졌다. 때문에 선조 초 이황은 조정에 나오길 주저했고, 조정에 있던 제자들은 그런 스승을 답답해했다. 현실에서 우리는 너나없이 조금의 객관과 많은 주관으로 살아간다.

 

사람들이 말하듯 한국은 세대마다 너무도 다른 강렬한 생애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다. 세대마다 겪었던 서로 다른 강렬한 사회적 경험은 개인에게 확고한 신념을 남겼다. 그 경험의 이질성으로 인해 아마도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기는 어려우리라.

그래도, 새해에는 서로에게 좀 더 너그러울 수 있기를 바라보자. 각자의 마음속에 숨겨진 작지만 밝고 따뜻한 선의가 있다고 믿으면서.

 

<이정철 한국국학진흥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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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