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정동진을 비롯한 해맞이 명소에는 어김없이 인파가 가득했다. 극심한 교통정체와 바가지요금도 새해 첫날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를 두 눈으로 직접 보고야 말겠다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새해 첫날의 해맞이는 이미 우리나라의 세시풍속이나 다름없다.

 

새해 첫날의 해맞이 풍속은 원래 이 땅에 존재하지 않았다. 혹자는 연오랑세오녀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하지만 다소 억지스러운 주장이다. 우리 고유의 풍속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해돋이 자체는 예로부터 인기 있는 구경거리였다. 예컨대 양양 낙산사에서 바라보는 해돋이는 금강산 유람객의 필수 관광 코스였다. 하지만 꼭 새해 첫날이라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기야 매일 뜨고 지는 해가 새해 첫날이라고 특별히 다른 건 아니다.

 

새해 해맞이의 유행은 전적으로 드라마의 힘이다. 1995년 방영된 <모래시계>의 인기에 힘입어 정동진이 유명해진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드라마 촬영지라는 것만으로는 관광객을 모으기 부족했는지, 누군가 이런저런 스토리텔링을 덧붙였다.

 

먼저 정동진이라는 이름의 유래이다. 정동진은 서울의 정동쪽에 있기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정동진은 고려시대부터 정동촌으로 불렸고, 고려의 수도는 개성이었다. 고려시대에 굳이 서울의 정동쪽이라서 정동진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허목(許穆·1595~1682)에 따르면 춘분(春分)에 이곳의 정동쪽에서 해가 뜨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삼척부사를 지낸 허목은 동해안 일대의 지리에 정통했으니, 그의 설명이 맞을 것이다.

 

정동진이 해맞이 명소로 자리 잡은 것은 관광객 유치를 위한 마케팅 덕택이다. <모래시계>에 등장한 정동진은 파도가 거세고 구름이 자욱하다. 해라고는 그림자도 찾을 수 없다. 그런데 누군가 정동진역에 ‘해 뜨는 역’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을 붙이고, 이곳으로 가는 열차를 ‘해돋이 열차’라고 명명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가난한 탄광촌이었던 정동진은 국민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처음부터 새해 해맞이를 노린 건 아니었지만, 어느덧 정동진은 새해 첫날이면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

 

정동진의 해맞이 마케팅이 성공을 거두자, 여러 지자체에서 우후죽순으로 해맞이 명소를 개발했다. 울산 간절곶, 포항 호미곶, 여수 향일암, 그밖에 해 뜨는 광경을 볼 수 있는 곳이라면 모두 해맞이 명소로 거듭났다. 연말이면 해맞이 관광객 유치를 위해 지자체 간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지만, 정작 새해 해맞이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새해 첫 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건 세계 공통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하지만 이렇게 집단적으로 열광하는 나라는 드물다. 게다가 떠오르는 해를 향해 소원을 빈다는 주술적 성격까지 가미된 우리의 새해 해맞이는 확실히 독특한 현상이다.

 

이러한 집단적, 주술적 성격의 새해 해맞이는 일본에서 유래한 풍속이다. 메이지(明治) 연간 신도(神道)가 국가 종교로 자리 잡으면서 유행했다. 일왕의 신년맞이 의식 사방배(四方拜)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해는 원시 인류의 보편적 숭배 대상이었지만 일본에서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일왕이 태양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의 자손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일제는 우리에게 이러한 믿음을 강요했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의 1월1일자 신문에는 큼지막한 일왕 내외의 사진과 함께 둥근 해 그림이 단골로 등장한다. 새해 첫날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는 곧 일제의 상징 ‘욱일승천(旭日昇天)’이었던 것이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에 뛰어들면서 그 상징은 더욱 노골적으로 이용되었다. 1940년대 1월1일자 신문에는 해를 향해 경례를 붙이는 군인의 사진, 허리를 숙이는 게이레이(敬禮)로 경의를 표하는 사람들의 사진도 함께 실리곤 했다. 해가 일왕을 상징하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경례를 붙이고 절을 하겠는가. 일제는 한낱 구경거리에 불과했던 해돋이에 거창한 종교적 의미를 부여했다. 경주 토함산 해돋이를 신비한 종교적 체험인 양 간증하는 글이 교과서에 실린 것도 일제강점기이다.

 

새해 해맞이는 우리 고유의 풍속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문화의 잔재에 관광객 유치를 위한 지자체의 마케팅이 결합하여 빚어낸 현상이다. 그런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수많은 인파가 모이는 보신각 타종 행사도 마찬가지다. 제야의 종은 원래 일본 사찰의 풍습이다. 1927년 일본 도쿄방송국이 최초로 중계했고, 우리나라에서는 1929년 경성방송국에서 일본 사찰에서 빌려온 종을 스튜디오에서 친 것이 처음이다.

 

새해 해맞이도, 제야의 종도 유래야 어쨌든 이미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으니 새삼 없애자고 하기는 어렵다. 소박한 마음으로 한 해의 소망을 기원하는 사람들을 탓할 수도 없다. 다만 그 역사적 함의를 도외시한 채 오로지 이벤트 만들기에 혈안이 된 지자체의 마케팅에서 나는 천민자본주의의 단면을 본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역사와 현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의 나라 한국, 무의 나라 일본?  (0) 2018.01.18
‘해마’를 제거하라  (0) 2018.01.11
해맞이의 유래  (0) 2018.01.05
어바웃 타임  (0) 2017.12.28
고대 일본 속의 한민족사를 찾아서  (0) 2017.12.22
우수함의 기준  (0) 2017.11.30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