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세를 쥐고 흔들거나 권력자의 총애를 독점한 사람치고 망하지 않은 경우가 있었던가. 역사의 곳곳에 그들이 남긴 흉한 자취가 선연하다. 오늘날 시민들의 이목을 끌고 있는 ‘다스’ 문제도 결국 사필귀정이 될 것이다.

 

중국은 부자나라라 그랬던지 탐관오리도 급수가 달랐다. 8세기 후반 당나라 정승 원재(元載)가 죽자, 황제는 그가 쌓아둔 뒷돈을 몰수하였다. 종유(鍾乳)라는 진귀한 보석도 500냥이 발견되었다. 후추도 800석이나 나왔다. 원산지가 동남아시아인 후추는 금값이었다. 원재가 권세를 부리며 부정 축재한 금액은 요즘 돈으로 수백조원은 될 듯했다.

권력형 부정부패를 바로잡지 못하면, 어느 나라고 중병에 걸려 망하기 마련이다. 실학자 성호 이익은 그 점을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취지로 시대의 병폐를 지적했다<성호사설 제11권>.

 

대낮에 남의 재물을 빼앗는 놈은 강도이다. 그런데 오늘날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들은 공공연히 백성의 재물을 착취한다. 그 피해는 인명을 살상하고 강도질하는 것보다도 외려 심하다. 우리는 ‘장리(贓吏)’, 즉 부패한 관리들의 위법행위를 날마다 지켜보면서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과연 이러한 세태는 어찌 된 일인가?

 

탐욕스러운 자가 지방관이라면 그 해독은 온 고을에 미친다. 감사라도 되면 온 지방이 그 해독을 입을 것이다. 그렇기에 주자(朱子)는 얼굴에 노기를 띤 채 꾸짖으셨다. “이런 놈들의 이마에는 큰 글자로 죄상을 새겨서, 멀리 귀양을 보내야 한다.”

 

아직 15세기까지만 해도 조선의 국가기강은 엄정했다. 이익은 그렇게 판단했다. 과연 1482년(성종 13년), 고천군 신정은 도장을 위조해 남의 노비를 빼앗은 사실이 발각되어 사형을 당했다. 그로 말하면, 성종 때 정승을 지낸 훈신 신숙주의 아들이었다. 또, 송칭이란 관리는 값비싼 외교문서 용지 한 장을 횡령한 죄로 처벌을 받았다. 송칭의 경우, 자손들까지도 벼슬길이 막혔다. 이익의 주장대로, 17세기 초까지도 부정부패 관리에 대한 조정의 처벌은 무거웠다. 1605년(선조 38년), 중견관리 강주와 채형 등은 뇌물죄로 고발되어 3년 동안이나 옥살이를 하였다. 옥중에서 그들은 여러 차례 가혹한 신문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조선의 사회질서는 16세기 말부터 심하게 흔들렸다. 전라도 선비 조경남은 임진왜란의 실상을 기록한 <난중잡록>을 남겼다. 그는 자신이 목격한 불편한 진실을 꾸밈없이 진술하였다. 놀랍게도 전쟁이 일어난 지 불과 1년 만에 조선의 국가재정은 탕진되고 말았다고 했다.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막대한 전쟁비용 때문이 아니었다. 나라가 혼란한 틈을 타서 탐관오리들이 앞다퉈 서로 국고를 훔친 것이었다. 재정이 고갈되자, 조정에서는 매관매직을 통해서라도 텅 빈 국고를 채우고자 하였다. 이로써 조선은 막다른 궁지에 내몰린 것이었다.

 

17세기 후반이 되자 상황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악화되었다. 조선사회는 부정부패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성호 이익은 자신의 시대를 날카롭게 고발했다.

 

“오늘날은 한번 수령이 되면 집을 화려하게 꾸미고, 농장을 대규모로 확장한다. 만약 비위 사실이 암행어사에게 적발되면 사방으로 손을 쓴다. 아침나절 그를 탄핵하는 문서가 관청에 접수됐다 해도, 저녁때가 되면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벼슬을 뽐내는 실정이다.”

 

학자 조익도 17세기 중반 조정의 타락상을 신랄하게 비판했다<포저집, 제25권>. 글 뜻을 간추려보면 대개 다음과 같았다.

 

사람들이 과거시험에 합격해 벼슬하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재산을 늘리는 방법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은 오직 부귀이다.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은 처음부터 사람들이 꿈꾸는 바가 아니다. 그들이 힘을 기울이는 것은, 오직 제 집안을 부자로 만드는 것뿐이다. 조정이 어지러워지든 사회질서가 엉망이 되든 괘념하지 않는다. 민생의 안정 따위는 당초부터 걱정거리도 아닌 것이다.

 

당장 저희가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나랏일은 무사하다고 간주한다. 그들은 오직 부귀만을 추구할 따름이다. 하필 이런 사람들을 골라서 국사를 맡기니, 나라가 혼란에 빠지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사특한 인간들은 오직 권세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들은 멀쩡한 정당도 쪼개거나 합쳐서 권력을 얻고자 한다. 일단 권력이 수중에 들어오기만 하면, 갖가지 국책사업을 빙자하여 국고를 탕진한다. 그들의 이름은 달라도 하는 짓은 늘 같다. 역사의 비판을 피하지 못한 탐관오리들의 소행이 언제까지나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숨기려 해도 조만간 재앙은 닥치고 말 것이다.

 

<장자> ‘서무귀(徐無鬼)’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해마(害馬)’, 곧 말을 해치는 파리와 기생충 따위를 제거하라고 했다. 그러면 말은 저절로 자란다. 나는 새해 벽두에 그 말의 뜻을 새기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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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