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스포츠나 항공기, 철도 등에 쓰이는 ‘영구결번’이 국보와 보물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국보 274호와 278호가 그렇다. 국보 274호(거북선별황자총통·사진)는 1992년 해군의 해전유물발굴단이 한산도 해역에서 인양한 유물이었다. 총통에는 ‘거북선의 총통은…한 발을 쏘면 반드시 적선을 수장시킨다(龜艦黃字…一射敵船必水葬)’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거북선에 장착한 대포가 발견됐다니 난리가 났다. 긴급문화재위원회가 단 3일 만에 국보 274호로 지정했다. 성분 분석 결과도 나오기 전이었고 문화재위원회에 무기전문가도 없었지만 만장일치 통과였다. 그러나 1996년 이 총통이 가짜였음이 뒤늦게 밝혀졌다. 진급에 눈이 먼 발굴단장(황대령)이 철물업자가 제작한 가짜총통에 명문을 새긴 뒤 한산도 해역에 빠뜨린 뒤 건져낸 것이었다.

 

가짜총통은 당연히 국보의 지위를 박탈당했다. 문화재 역사상 가장 창피한 일로 기록된다. 국보 278호는 제2차 왕자의 난(1400년)을 평정한 공로로 태종이 이형이라는 인물에게 내린 ‘원종공신녹권 및 녹권함’이었다. ‘원종공신녹권’은 큰 공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공적은 세운 원종공신, 즉 ‘공신대우’에 내린 증서다. 그런데 2010년 문화재위원회는 이 국보 278호를 보물(1657호)로 격하시켰다. 왜냐. 태종은 제2차 왕자의 난 직후인 1401년 ‘핵심공신’으로 꼽은 47명에게 ‘좌명공신녹권’을 내렸다. 그런데 그때 핵심공신인 마천목(1358~1431)이 받은 ‘좌명공신녹권’이 새롭게 확인되어 2006년 보물(1469호)로 인정받았다. 문화재위원회의 결론은 ‘핵심공신의 녹권이 보물인데, 공신대우의 녹권이 국보라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보물 중에도 영구결번이 존재한다. 163호(쌍봉사 대웅전)·458호(쌍계사 적묵당)·476호(금산사 대적광전)·479호(낙산사 동종) 등은 화재 소실로 보물의 지위를 잃었다. 5호(중초사지 삼층석탑)는 가치가 떨어져서, 1173호(남은의 유서와 남재의 왕지)는 원본이 아니어서, 864호(쇠북)는 거북선 총통처럼 가짜임이 밝혀져서 각각 영구결번으로 남았다. 341호(청자상감모란문표형병)는 이미 국보(116호)가 된 것을 깜빡하고 보물로 중복지정했다가 취소한 케이스다. 최근 <삼국사기>의 국보 승격을 두고 ‘아직까지 <삼국사기>가 국보가 아니었냐’고 묻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문화유산을 제대로 알아보고 잘 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문화재 영구결번’이 웅변하고 있다.

 

<이기환 논설위원>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