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70년대 일본의 비약적 경제 성장은 유럽인들의 동양에 대한 인식은 물론, 역사에 대한 인식까지 바꾸었다. 19세기 유럽인들은 유럽에서만 진정한 역사 발전이 있었고, ‘근대(modern)’를 자신들만 만들어냈다고 믿었다. 일본의 경제 성장을 본 후, 그들은 ‘근대’가 유럽 밖에서도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흥미롭게도 19세기 유럽인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다. 1만엔권 지폐의 주인공인 일본 개화기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가 ‘탈아입구(脫亞入毆)’, 즉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들어가자고 주장했던 것도 그런 인식에서 나왔다. 한국도 다르지 않았다. 1966년 1월 박정희 대통령 연두교서에 처음 등장한 이래 널리 쓰였던 ‘조국 근대화’란 말도 같은 맥락에 있었다. 근대의 기원과 표준은 유럽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미국은 확장된 유럽의 일부로 여겨졌다.

 

유럽인들은 아시아에 대한 자신들의 ‘침략’을 야만을 깨치는 ‘문명’의 확산으로 생각했다. 아시아에 식민지를 건설한 것은 문명을 전파한 것이고, 자신들은 그런 역사적 사명을 띠었다고 믿었다. 그것을 요약한 말이 ‘백인의 짐(The White Man’s Burden)‘이다. 제국주의가 절정으로 치닫던 1899년 <정글북>의 저자로 유명한 영국 작가 키플링(Rudyard Kipling)이 발표한 시의 제목이다. 그는 미개한 인종을 바르게 이끄는 것이, 백인이 싫어도 짊어져야 할 짐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는 1907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에서 경제 성장이 달성된 후, ‘근대’에 대한 논쟁은 유교와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흥미롭게도 경제 성장에 성공한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문화적으로 유교의 영향이 강했다. 여기에 착안해서, 이들 나라에서 유교적 영향 아래 국가 주도 경제 성장이 가능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에 따라 한때 ‘유교자본주의’라는 말이 유행했다. 그런데 그 주장은 유교가 민주주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총리와 우리나라 김대중 대통령 사이에서 유교와 민주주의에 대한 논쟁이 잠시 있었다. 리콴유 총리는 권위주의적 유교가 경제 성장에는 유리하지만 민주주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그것에 반대했다. 그는 민주주의가 특정한 문화유형이라기보다는 인류사의 보편적 가치임을 주장했다. 실제로 싱가포르나 중국은 물론이고 심지어 일본까지도 그들 나라의 경제적 수준에 비해서 시민사회의 역량이나 민주적 제도 운영이 부족한 듯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 리콴유 총리의 주장이 맞다면 싱가포르나 중국, 나아가 일본까지도 그들의 민주화 정도가 낮은 것이 지도층 책임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전통문화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이런 관점은 어떤 면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보인다. 중국은 민주주의 발전 없는 경제 성장을 계속하고 있고, 그것을 또 하나의 정상적 정치체제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2017년 한국의 촛불혁명은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빛을 밝혔다. 그것은 한국 안에 머물지 않고 세계에 퍼져나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해 8월29일자에 “한국의 민주주의와 경제가 전진하고 있다”는 사설을 냈다. 그 며칠 전에 있었던 삼성 이재용씨의 1심 유죄 판결 이후에 나온 사설이다. 사설은 한국이 전직 대통령과 최대 재벌 삼성의 총수를 재판대에 세웠고, 이는 한국에 사법 정의가 지켜지고 있음을 뜻한다고 주장했다.

 

한 달쯤 뒤 미국 블룸버그 뉴스에 실린 마이클 슈먼(Michael Schuman)의 논평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논평 제목은 ‘한국이 (세계의) 진보주의를 구할 수 있을까?’이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오늘날 한국이 겪는 빈부격차 심화, 경제적 생산성 둔화, 고령화 등 문제는 대부분 선진국들도 겪고 있는 문제이다. 다른 선진국들이 정부 역할을 축소하는 데 반하여 문재인 정부는 자본주의적 정책 운영을 하면서도 정부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슈먼은 한국의 이런 조치가 성공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 정부의 재정건전성이 높고, 재정에서 복지 부담이 낮기 때문에 그런 정책을 펼칠 수 있는 힘도 있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한국이 그러한 세계적 경제문제를 민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논조를 펼쳤다.

 

한국은 조선시대에도 국왕의 권력이 절대적이지 않았다. 그 가장 큰 이유는 현실의 정치권력이 사회적 권위까지 독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국왕 선조는 현실에서 최고 정치권력을 가졌지만, 이황은 왕이 가르침을 청해야 할 정도의 학문적·사회적 권위를 가졌다. 현실의 정치권력이 잘못 가고 있다고 생각할 때, 사회적 권위는 그것에 경고하는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상소, 1898년의 만민공동회, 4·19혁명, 1987년의 6월 민주항쟁, 그리고 2017년의 촛불혁명은 그런 흐름 속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어느덧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세계적 전진에서 한국에 중요한 역할이 맡겨지고 있다. 맥락과 취지는 다르지만 오늘날 한국인에게 주어진 역사적 책무를 키플링 식으로 말하면 ‘한국인의 짐’이라 불러야 할 것 같다.

 

<이정철 한국국학진흥원 연구원>

 

'역사와 현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애틋하고 솔직한 아버지 박세당  (0) 2018.02.08
조선은 기록의 나라인가  (0) 2018.02.01
한국인의 짐  (0) 2018.01.25
문의 나라 한국, 무의 나라 일본?  (0) 2018.01.18
‘해마’를 제거하라  (0) 2018.01.11
해맞이의 유래  (0) 2018.01.05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