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임금의 글씨를 한껏 치장해서 병풍이나 족자를 만드는 풍조가 일고 있습니다. 임금의 도리가 아닙니다.” 1492년(성종 23년) 대사헌 이세좌의 상소문이다. “임금이 고작 서예 같은 하찮은 기예를 자랑하는 게 될 말이냐”면서 “제발 자중 좀 하라”고 꼬집었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다만 영돈녕(종친부 업무를 관장하는 종1품)에게 몇 점 내렸을 뿐인데, 이게 유출된 것인가.” 성종은 변명을 늘어놓으며 “경은 어디서 (내) 글씨를 보았다는 거냐”고 발뺌했다. 이세좌는 굴하지 않고 “신승선·윤은로·윤여림의 집에서 똑똑히 보았다”고 증거를 들이댔다. 아니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면서, 글씨 잘 쓰는 것이 무슨 허물인가. 하물며 지존인 임금이 ‘명필 자랑’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건가.

 

이 대목에서 이세좌가 언급한 ‘뭐든지 지나치게 좋아하면(玩物) 군주의 본뜻을 잃게 된다(喪志)’는 ‘완물상지론(玩物喪志論)’이 심금을 울린다. 어려서부터 받은 영재교육 결과 예외 없이 명필소리를 들었던 임금이었다. 그러나 자랑하면 못난 임금 소리를 듣기 일쑤여서 대놓고 내세울 수 없었다. 1484년 창경궁을 창건한 성종이 “내간의 현판 정도는 내가 써보면 어떻겠냐”고 했다가 만만치 않은 반대에 부딪혔다. <성종실록>은 “일부 신료가 임금에게 하찮은 기예(서예)를 발휘하도록 했다”고 비판했다.

 

 

최근 이순신 장군의 사당인 ‘현충사’ 현판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현충사 현판은 원래 숙종의 작품이었다. 1707년(숙종 33년) “제 몸 죽여 나라를 건진 것은(身亡國活) 이 분에게서 처음 본다(視見斯人)”는 제문과 함께 ‘顯忠祠(현충사)’ 현판(사진)을 하사했다. 그러나 1966년 성역화 사업으로 새롭게 꾸며진 현충사 본전에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인 ‘현충사’가 내걸렸다. ‘현충사’뿐 아니라 ‘충의문’ ‘충무문’ 등 현충사 중심축선에 모두 ‘박정희 현판’이 걸려 있다. 반면 숙종의 현판은 구석으로 옮겨간 구 현충사 본전에 걸려 있다. 박정희 현판을 철거해야 한다는 쪽은 묻는다. ‘지금의 현충사는 이순신 장군의 것인가. 박정희의 것인가.’ 물론 ‘박정희 현판’ 그 자체도 역사라는 의견도 있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전국의 문화재에 걸린 ‘박정희 현판’은 현충사를 포함해서 28곳(34건)에 달한다. 구석으로 밀린 숙종의 현판과, 현충사 하면 떠오르는 박정희의 이미지…. 얼마전 현충사를 답사하고 돌아선 필자의 뇌리에서 자꾸 “지나치면 뜻을 잃는다”는 ‘완물상지’ 성어가 떠올랐다.

 

<이기환 논설위원>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