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의 항왜(항복한 왜인) 중에는 사야가(沙也加)가 유명하다. 사야가는 부산포 상륙 즉시 ‘동방예의지국(조선)의 백성이 되고자’ 귀화했다. 조선은 사야가에게 ‘김충선(金忠善)’의 이름을 하사했다<모하당 문집>·사진). 김충선뿐일까.

 

 

1597년(선조 30년) “일본군 진영은 1만명에 이르는 항왜 때문에 크게 낙담하고 있다”(<선조실록>)는 기록이 있다. 이 중 으뜸은 여여문이다. 선조는 “여여문은 보통 왜인이 아닌데, 병이 들었다 한다. 특별히 후대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왜일까. 여여문은 아동대(兒童隊)의 검술과 사격술을 지도하는 책임자가 됐다. 지도한 50명 중 17명의 아동이 합격했다. 여여문은 매복유인술 등 왜군의 전술도 구체적으로 알려주었다. 적진의 왜장을 죽이는 암살작전까지 제안했다. 여여문은 특히 ‘우리(我) 조선’이라 표현하는 등 뼛속까지 조선인이 됐다. 정유재란 때는 왜인 복장으로 밀파되어 적진의 형세도를 그려왔다. 여여문은 1598년(선조 31년) 울산전투 때 적진에 들어가 왜적의 수급을 넷이나 잘라 돌아오다가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 왜적으로 오인한 건지, 혹은 공을 탐한 것인지, 명나라 장수 마귀가 여여문을 죽인 것이다. 마귀는 여여문의 왜군 수급까지 가로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사백구의 이야기 또한 심금을 울린다. 김해부사 백사림의 휘하에 속했던 항왜 사백구는 황석산성 전투에서 왜적 4명의 목을 베었다.

 

산성이 함락되자 백사림의 가족을 성 밖으로 피신시켰다. 사백구는 다시 왜인들이 득실거리는 성안으로 들어가 입을 것, 먹을 것을 구해왔다. 사백구는 백사림 가족에게 옷을 입혀주고 밥을 먹이면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경상우병사 김응서는 “조선의 사대부도 못하는 처자식의 구제를 오랑캐(사백구)가 했다”고 극찬했다. 1597년 정진전투에서 적의 수급을 벤 사고여무, 요질기, 염지, 손시로, 연시로 등의 이름도 실록에 보인다. 주질지와 학사이는 “우리는 본국(일본)을 등졌으니 조선 사람이다. 적의 괴수(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목을 베겠다”면서 구체적인 암살계획을 세운 항왜들이다.

 

조선 조정은 김충선(사야가)의 예처럼 일부 항왜에게 김귀순(金歸順), 김향의(金向義), 이귀명(李歸命) 같은 뜻깊은 성과 이름을 하사했다. 여여문이나 사백구 등처럼 실록에 이름자를 남긴 이들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1만명에 달하는 절대다수 항왜의 자취는 찾을 수 없다. 뒤늦게나마 그들을 위한 진혼곡을 불러본다.

 

<이기환 논설위원>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