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5년(종중 10년) 11월22일, 이틀 전 사간원 정언(正言)에 임명된 34살의 조광조가 그의 첫 상소를 올렸다. 여기서 그는 언론감찰기관인 사간원과 사헌부의 기관장인 대사간과 대사헌의 파직을 요청했다. 사간원 최말단 정6품직에 불과한, 그해에 문과에 막 합격한 새파란 신참이 종2품과 정3품 언론기관 책임자의 직위 해제를 요구한 것이다. 황당해 보이지만, 그 요구는 논란을 거친 후 받아들여졌다. 조광조의 상소 내용을 이해하려면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이해 3월에 중종의 부인 장경왕후가 사내아이를 낳은 지 7일 만에 사망했다. 이 아이가 후일 중종을 잇는 인종이다. 이때 중종반정으로 10년 전 강제 이혼을 당한 중종의 첫 부인 신씨를 왕비로 다시 맞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주로 젊은 사림 쪽 목소리였다.

 

신씨를 왕비로 다시 맞는 문제는 매우 정치적인 사안이었다. 중종은 왕이 되기 전에 신씨와 결혼한 상태였다. 그런데 신씨는 반정 당시 연산군 정권 좌의정의 딸이었다. 반정공신들은 역적의 딸을 왕비로 인정할 수 없다며 반정 직후 중종과 신씨를 이혼하게 했다. 이 때문에 신씨가 다시 왕비로 복귀한다면 그것은 반정공신들의 행위를 공개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정치적 맥락이 바로 언급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신씨 복위를 반대하는 공식적 명분은 막 태어난 원자와 관련된 것이었다. 본래 왕비였던 신씨와 중종 사이에 아들이 태어난다면 원자의 지위가 어정쩡하게 되고, 그것이 정치적으로 크게 문제 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젊은 사림들은 신씨가 다시 왕비로 복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정치적 차원이 아닌 유교적 명분에는 더 적합했다. 그에 따라 담양 부사 박상과 순창 군수 김정이 함께 상소를 올렸다. 신씨를 왕비로 복위시키고, 그녀의 폐위를 주장했었던 반정공신들의 삭탈관작을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이 상소에 대해서 사간원과 사헌부는 두 사람을 귀양 보내라고 요청했고, 특히 대사간 이행의 강력한 주장에 힘입어 그 요청이 관철된다. 사헌부와 사간원의 이 주장에 대해서 재야사림의 반대가 들끓었다.

 

조광조는 이렇게 주장했다. “언로(言路)가 통하느냐 막히느냐 하는 문제는 국정에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임금이 언로를 넓히기에 힘써서 위로 고위관료로부터 아래로 백성에 이르기까지 다 말할 수 있게 하지만, 그래도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 있을까 염려하여 사간원과 사헌부를 두어 그 일을 맡겼습니다. 두 기관 관원의 말이 혹 지나치더라도 임금이 마음을 비워 놓고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것은 언로가 혹 막힐까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박상·김정 등의 말이 지나친 듯해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어찌하여 그들을 처벌까지 할 수 있습니까? 김정 등에 대하여 다른 대신들이 혹 죄주기를 청해도 사간원과 사헌부는 그들을 풀어 주어서 언로를 넓혀야 할 터인데, 도리어 스스로 언로를 훼손하여 그 직분을 먼저 잃었습니다. 신(臣)이 이제 정언이 되어 어찌 직분을 잃은 그들과 일을 같이하겠습니까? 서로 용납할 수 없으니 사간원과 사헌부를 파직하여 다시 언로를 여소서.”

 

일전에 서지현 검사가 한 방송에 나와서 인터뷰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제는 너무나 잘 알려진, 자신이 8년 전 성추행을 당한 이야기였다. 서 검사가 전한 내용이 개인적으로 크게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어떤 조직이나 정말로 이상한 인간들이 있게 마련이고, 검찰이 다른 공기관과 확연히 구별될 정도의 윤리적인 기관은 아니기에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서 검사가 전한 이야기 중 한 장면만은 마치 영상처럼 머릿속에 그려졌다. 서 검사와 그녀가 성추행범으로 지목한 안태근이라는 사람 앞자리에 앉았던 여러 명의 검사들이 그 이상한 광경을 꽤 긴 시간 마치 못 본 듯이 보고 있는 장면이다.

 

그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얼까? 상식으로 추론하면, 자기와 직접 관련 없는 일로 조직 내에서 힘 있는 상사와 갈등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물론 그들도 적당한 시기에 검사 일을 그만두고 변호사 개업을 계획했으리라. 그런데 변호사로 전업해도 어느 정도 높은 직급에서 그만두어야 수입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직장인으로서 그들의 생각과 처신은 상식적이다. 문제는, 검찰이 공식적으로 인권을 책임지는 국가기관이라는 점이다. 인권은 민주주의의 대체할 수 없는 중심 가치이다.

 

조광조 역시 신씨를 다시 왕비로 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상소에서 그렇게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정치적 사안의 결정내용에 대해서가 아닌, ‘언로’라는 매우 원칙적인 차원에서 접근했다. 조선시대에 사간원과 사헌부는 언로를 책임지는 기관이었다. 조광조의 상소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신(臣)이 이제 정언이 되어 어찌 직분을 잃은 사간원과 사헌부 관리들과 일을 같이하겠습니까? 서로 용납할 수 없습니다”라는 부분이다. 조광조는 자리를 걸었던 것이다. 서지현 검사가 언론에 나와서 지난 일을 말한 것은, 아마도 검사를 그만둘 각오를 하고 한 것이리라. 또 그녀는 자신의 사례로 인권 문제를 이야기했다. 역설적이지만, 현시점에서 서지현은 검사다.

 

<이정철 한국국학진흥원 연구원>

'역사와 현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  (0) 2018.03.15
밥이 하늘이다!  (0) 2018.03.08
그만둘 수 있어야 검사다  (0) 2018.02.22
메이지유신과 386의 유신  (0) 2018.02.19
애틋하고 솔직한 아버지 박세당  (0) 2018.02.08
조선은 기록의 나라인가  (0) 2018.02.01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