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사진)’가 보물 제1973호로 지정됐다. 새삼 자료를 뒤져보니 ‘미인도’는 혜원이 붙인 게 아니라 후대의 제목이었다. 적당치 않은 제목이다. 그냥 ‘미인도’라 명명하는 순간 개별 작품의 독자성을 잃고 미인 즉 ‘아름다운 여성의 일반적인 범주’로 갇히고 만다. 다른 이름을 붙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혜원의 ‘이른바 미인도’는 과연 누구를 모델로 그린 것일까. 이구환(1731~1784)은 “혜원은 ‘동가숙서가식’ 떠도는 화가였으며, 방외자(국외자)로서 여항인(중인·서얼·평민) 틈에서 살았다”고 했다. 오세창(1864~1953)은 “혜원의 관직이 첨사(무관직)였다”(&lt;근역서화징&gt;)고 전했다. 각 병영에 파견되어 군사지도 등을 제작한 화가였을 가능성이 있다. 18~19세기 기방(妓房)을 운영하고 기녀를 관리해주는 이들이 있었다. 별감과 포도청 군관, 승정원 사령, 의금부 나장, 무사 등이다. 조선 조정은 권력깨나 있고 힘깨나 쓰는 하급관리들에게 ‘기방운영과 기녀관리권’을 허용했다. 이들을 기부(妓夫·기둥서방)라 했다. 그렇다면 혜원은 자유로운 영혼의 화가로서 이 기방 저 기방을 오간 ‘기부’였을까. 물론 기녀들을 착취하는 ‘악질기부’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그 여인들과 동고동락했던 ‘기녀들의 오빠’였을 수 있다. <혜원전신첩>(국보 제135호) 중 기녀가 주인공인 작품이 18점이나 된다. 혜원은 여성, 그 가운데서도 기녀를 견고한 유교사회의 담장 밖 세상으로 해방시켰다. 반면 ‘당신(기녀)의 마부가 되겠다’고 기녀가 탄 말의 고삐를 잡은 ‘연소답청’ 속 양반의 꼬락서니에서 통쾌한 풍자를 엿볼 수 있다.

 

혜원의 ‘이른바 미인도’에 등장하는 여인도 기녀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알 듯 모를 듯한 ‘조선판 모나리자’ 미소와 꼭 다문 입술, 그리고 살짝 모습을 드러낸 속곳 자락과 새하얀 버선…. 특히 옷고름을 매만지는 여인의 손길은 갖가지 상상력을 자극했다. 작품에 작가가 흥취에 젖어 써내려간 시 한 편이 심상치 않다. “가슴속에 서려 있는 여인의 봄볕 같은 정, 붓끝으로 그 마음까지 고스란히 옮겨 놓았네.” 요동치는 모델의 흉중을 그 정신까지 붓끝으로 전했다는 희열이 아닌가. 만약 여인이 가슴속 피어나는 춘정을 화가의 앞이라고 해서 부끄러워 숨겼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작품이 아닌가. 저 여인은 예술적인 영감을 불어넣어준 혜원의 ‘뮤즈’였을까. 아니면 혜원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마음속, 단 한 사람의 여인이었을까.

 

<이기환 논설위원>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