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王者)는 백성을 하늘로 알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안다(王者以民人爲天, 而民人以食爲天).”

 

한고조 유방의 책사로 이름난 역이기의 말이다. 그 당시 항우는 유방을 심하게 압박했고, 그러자 유방은 곡창인 오창을 포기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역이기의 고언을 받아들여 오창을 지켰다. 이에 민심도 안정되었다.(<사기>, 제97권)

 

망할 나라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14세기 후반, 고려의 귀족들은 혹독했다. 그들은 물푸레나무(水靑木)로 만든 회초리로 농민을 때리며 땅을 빼앗았다. 가난한 농민들은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었다. 때마침 북쪽에서는 홍건적이 쳐들어왔고, 남쪽에서는 왜구의 침략이 이어졌다.(<고려사절요>) 고려 백성들의 마음은 이미 나라를 떠났다.

 

1394년(태조 3년) 8월, 간관(諫官) 전백영 등은 고려 말의 사정을 회상하였다. “토지제도가 문란하여 세력 있는 귀족들이 토지를 독차지했고, 호적도 폐지되어 양민과 천인이 뒤섞여 송사가 계속되었습니다. 일가들끼리도 서로 헐뜯으며… 남의 땅을 빼앗았습니다. 어떤 이는 남의 노비를 빼앗았고, 양민을 억눌러 노비로 삼았습니다. 자연히 백성들도 원망하고 신령도 분노해 그 나라가 망했습니다.”

 

사태를 정확히 인식한 것은 이성계 일파였다. 그들은 백성의 억울함을 달래고 기득권층의 부정축재를 무로 돌리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고려의 토지대장을 몽땅 불살라버린 것이었다. <태조실록>에는 그때의 사정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공전과 사전의 장부를 저잣거리에서 불살라버렸다. 그 불길이 며칠이 가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고려의) 창왕이 울면서 말했다. ‘사전의 법이 과인의 대에 이르러 혁파되었구나. 애석하도다!’”(<태조실록>, ‘총서’)

 

억울하게 토지를 빼앗긴 백성들에게는 이보다 통쾌한 일이 없었겠다. 그런데 이성계의 책사였던 정도전은 유방의 책사 역이기보다 몇 배 더 개혁적이었다. 정도전은 이 기회에 토지를 몰수하여 인구수에 따라 농사짓는 백성들에게 분배하고자 하였다. 그는 귀족사회를 타파하고 자영농 중심의 새 국가를 출범시키고자 하였다.

 

아직 세력을 부지하고 있던 고려귀족들의 저항이 결사적이었다. 그들은 일치단결해 정도전의 정책을 비방하고 원망하면서 갖가지로 방해하였다. 결국 백성들은 경자유전(耕者有田), 곧 자영농으로 재탄생할 기회를 잃고 말았다. 새 역사의 물꼬를 트는 것은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 보다. 그러나 정도전의 토지개혁이 완전히 수포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일종의 타협책이 등장했다. 왕실 경비에 충당할 상공전(上供田)을 비롯해, 국가의 공공경비를 충당할 국용전(國用田), 군량을 얻기 위한 군자전(軍資田)이 설정되었다. 문무관리에게 지급할 문무역과전(文武役科田)도 확보되었다. 그 밖에 다양한 공역(公役), 곧 공적 임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도 줄 토지도 마련되었다. 과부로서 수절하는 여성도, 수공업에 종사하는 공장(工匠)까지도 생계를 해결할 토지를 지급받았다.

 

이쯤 되자 정도전은 자신이 추진했던 토지개혁의 성과를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백성에게 토지를 분배하는 일이 과거의 성현에 비길 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토지제도를 바로잡아, 한 시대의 법도를 이루었다. 전조(즉, 고려)의 문란한 제도에 비하면 만 배나 나아진 것이었다.”(<삼봉집>, 제13권, 조선경국전 상)

 

백성 곧 시민들은 밥을 하늘로 삼기 마련이다. 생계가 불안정하면 살아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밥의 문제를 한 차원 더 높이 끌어올린 것은 동학이었다. 특히 제2대 교조 최시형 선생이 그러했다.

 

1885년(고종 22년) 최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천지만물은 모두 하늘을 모시고 있다. 그러므로 이천식천(以天食天)은 우주의 당연한 이치이다.” 우리가 날마다 먹는 음식도 하늘이기 때문에, 음식물을 섭취하는 행위는 거룩하다는 말이었다. 동학에서는 한때 신도들에게 어육(魚肉·일체의 육식)과 주초(酒草·술과 담배)를 금지하였다. 1881년(고종 18년), 최시형은 이 금령을 해제하였다. 하늘로써 하늘을 먹여 기르는 일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는 취지였다. 사람이 동식물을 먹고 사는 것이나, 동식물이 무엇인가를 양분으로 섭취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보았다.

 

예컨대 사람이 쌀과 쇠고기를 먹는다면, 이것은 하늘(쌀, 소)로써 하늘(사람)을 기르는 것이다. 또, 벼나 소가 퇴비나 사료를 섭취하는 것도 똑같은 이치였다. 최시형 선생의 이런 가르침은 적어도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첫째, 만물을 하늘처럼 존중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사물에 대한 지극한 존중의 마음을 가질 때라면 인간은 그 어떠한 대상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동학을 신앙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19세기 말에 동학이 이룩한 철학적 성과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21세기 한국사회는 사람도 동식물도 제값을 잃어버린 지 오래이다. 이제라도 잠시 고개를 돌려, 밥도 하늘이요 사람도 하늘이란 가르침을 음미해보면 어떨까 싶다.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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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