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칠세부동석’은 전통적인 남녀 규범을 대표하는 용어로, <예기(禮記)> ‘내칙(內則)’ 편에 나온다. <예기(禮記)>에 나오는 남녀 규범은 이뿐만이 아니다. 밥을 함께 먹어도 안되고(不共食), 물건을 직접 주고받아도 안되고(不親授), 물건을 빌려줘도 안된다(不通乞假). 그릇을 함께 쓰지 않고(不同器), 우물을 함께 쓰지 않고(不共井), 욕실을 함께 쓰지 않으며(不共 ), 침구를 함께 쓰지 않는다(不通寢席). 옷을 함께 입지 않고(不通衣裳), 옷걸이도 함께 쓰지 않으며(不同枷), 수건과 빗조차 함께 쓰지 않는다(不同巾櫛). 이 밖에도 남녀가 같은 수레를 타면 남성이 몸을 살짝 돌려서 마치 등지고 앉은 듯한 포즈를 취한다는 따위의 세세한 규정이 셀 수 없을 정도다. 한마디로 직접 접촉은 물론 간접 접촉까지 원천봉쇄하는 것이 전통적인 남녀 규범이다.

 

사실 이런 규범은 아무리 조선시대라도 다 지키기 어려웠을 것이다. 남녀 관계는 다양하다. 남편과 아내도, 부모와 자식도, 형제와 자매도 남녀 관계다. 가족 간에 이런 규범을 다 지킬 수 있겠는가. 이로 인해 규범의 적용 범위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는가 하면, 멀고 가까운 관계에 따라 새로운 규범을 마련하기도 했다.

 

신기선(申箕善·1851~1909)은 ‘남녀의 분별을 논하다(辨男女論)’에서 남녀 관계를 여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유형별로 지켜야 할 규범을 제시했다.

 

첫째는 부부 관계다. 밤에는 나란히 앉지 않고 낮에는 한자리에 앉지 않는다. 물건을 직접 주고받아도 안되고, 서로 존댓말을 써야 한다. 부부 사이인데 너무한 것 아니냐고? 남녀의 분별은 부부관계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부부유별’은 유교 사회의 헌법이었다.

 

둘째는 부모와 자식 관계다.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아들은 여덟 살이 넘으면 포옹하지 않고, 성인이 되면 손을 잡지 않는다. 신체 접촉으로 애착을 형성하고 사랑을 표현한다는 관념이 없던 시대다. 남녀의 분별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셋째는 형제 자매 및 3촌 이내의 친족 관계다. 나이차가 많아도 나란히 앉으면 안되고, 몸이 닿으면 안된다. 연배가 비슷하면 물건을 직접 주고받지 않고, 한자리에 앉지 않는다.

 

넷째는 4촌에서 8촌 사이의 친족 관계다. 역시 물건을 직접 주고받지 않고, 한자리에 앉지 않는다. 함부로 말하거나 웃어도 안되고, 상대를 손님처럼 대해야 한다.

 

다섯째는 혼인으로 맺어진 인척 관계다. 형부와 처제, 형수와 시동생, 시아버지와 며느리, 장모와 사위가 여기에 해당한다. 앉을 때는 떨어져 앉고, 걸을 때는 떨어져 걷는다. 큰일이 아니면 서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친·인척이 아닌 관계다. 이 관계에서 지켜야 할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만나지 않는다.’ 친·인척이 아닌 이성을 만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신기선은 갑신정변에 참여한 개화파 인사이다. 하지만 그의 성의식은 보다시피 극도로 보수적이다. 정치의식과 성의식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사람도 성의식은 보수적일 수 있다. 요즘 정치권의 미투 운동을 보면 납득이 간다.

 

남녀칠세부동석을 위시한 남녀 규범은 보수적 성의식이 지배하던 조선시대의 산물이다. 먼 옛날의 고리타분한 규범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의 남녀 규범이 조선시대로 회귀할 판국이다. ‘펜스룰’ 때문이다. 미투 운동의 여파로 구설에 오르는 것을 피하기 위해 여성과의 접촉 자체를 꺼린다는 것이다. 현대판 남녀칠세부동석이다.

 

펜스룰은 아내가 아닌 여성과는 절대로 단둘이 식사하지 않고 보좌관은 반드시 남성으로 임명한다고 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인터뷰에서 비롯됐다. 그렇다면 아내와는 왜 단둘이 식사를 하는가? 부부도 엄연히 남녀 관계가 아닌가? 부부간에도 성폭력이 있을 수 있고, 우리 법은 이미 부부간 성폭력을 처벌하고 있다. 그렇다면 펜스룰은 조선시대처럼 부부 관계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 부모와 자식 관계도 펜스룰에서 예외일 수 없다. 친족 간 성폭력의 가해자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존재가 다름아닌 친아버지(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10)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성추문을 피하기 위해 모든 이성과의 접촉을 차단한다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은 물론 가정생활도 포기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겠는가? 펜스룰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다. 접촉을 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다만 조선시대의 남녀 규범이 지극히 구체적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조선시대 남녀 규범이 아무리 고리타분하다지만, 과연 우리는 그 대안을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규범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추상적인 것이 현실이다. 해도 되는 행동과 해서는 안되는 행동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런 건 기업이 빠르다. 대기업은 직장 내 성희롱 예방 매뉴얼을 만들어 활용한 지 오래다. 하지만 이런 규범조차 없는 집단이 부지기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대사회에 걸맞은 남녀 관계의 규범을 새로 마련하는 것이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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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