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는 죽기 전에 가짜무덤 72개를 만들라고 명하면서 ‘누군가 무덤을 파헤칠까 두렵다’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원말명초의 인물인 나관중의 <삼국지연의>가 묘사한 조조(155~220)의 최후이다. 의심 많은 조조가 죽은 뒤에도 사람들을 속이는 ‘간적’의 이미지를 부각시킨 대표적인 장면이다. 하지만 조조보다 약 70년 뒤의 인물인 진수(233~297)의 <삼국지>는 “조조는 비범한 사람이자 시대를 초월한 영걸이었다(非常之人 超世之傑)”고 극찬했다. 소설, 그것도 후대의 작품인 <삼국지연의>보다 거의 비슷한 시기, 그것도 <사기>와 <한서>에 버금가는 정사인 <삼국지> 기록을 믿어야 할 것이다. 특히 검약은 조조의 으뜸 덕목이었다.

 

 

조조는 죽기 전 “척박한 땅에 묻고 봉분을 높이 쌓거나 나무를 심지 말고 황금이나 옥 같은 진귀한 보물을 넣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유언을 남겼다.(&lt;삼국지&gt; ‘위무제’) 훗날 당나라 태종은 “조조야말로 혼란에 빠진 나라의 기둥이자 천하를 바로잡은 으뜸 인물”이라는 제문을 남겼다. 북송의 사마광도 &lt;자치통감&gt;을 편찬하면서 조조와 조비가 세운 위나라의 연호를 사용했다. ‘조조(위나라)=정통왕조’임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남송의 시대에 명분론을 앞세운 주자학이 정립되면서 조조는 한나라 황제를 겁박하고 백성들을 혹독하게 다룬 불충하고 각박한 지도자로 폄훼됐다. 남송의 시인 유응부는 “살아서는 하늘을 속여 한나라 통치를 끊고 죽어서는 사람을 속여 가짜무덤을 만들었다”는 시로 조조를 조롱했다. 이 무렵 유포된 72개 가짜무덤설이 나관중과, 나관중의 작품 중 3분의 1을 개작한 청나라 모성산·모종강 부자의 <삼국지연의>에 반영된 것 같다.

 

구구한 해석을 낳았던 조조의 진짜 무덤이 조조의 근거지인 업성(업城) 인근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중국 허난성(河南省) 문화재고고연구원은 2009년부터 ‘위무왕(魏武王)’의 석비(사진) 등 250여점의 유물이 나온 고분의 주인공은 조조가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분의 윗부분은 말끔하게 잘려 있었다. 중국 측은 “조조의 아들인 조비가 ‘검소한 장례를 치르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무시하고 대규모 봉분을 조성했다가 마음을 바꿔 깎아낸 것”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위무왕’이라는 칭호가 조조 생전에 쓰지 않은 명칭이라는 점에서 누군가의 조작이 아니냐는 의혹이 여전히 제기된다. 새로운 가짜무덤설의 등장이다. 사후 1800년이 지난 지금도 조조는 여전히 ‘핫한 인물’이다.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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