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 전옥서 터에 녹두 전봉준 선생의 동상이 건립되었다(2018년4월24일). 그 자리에서 선생이 순국한 지 123년 만이다.

 

나는 그를 장군이라 부르지 않는다. 본래 그는 농민의 아이를 가르친 ‘서당 훈장님’이었다. 동학에 들어가서는 ‘접’이라 불리는 신앙단체의 스승이 되었다.

사후에는 우리 모두의 스승이 되었으니, 녹두는 선생이다.

 

1894년 1월10일, 동학접주 전봉준은 1000여명의 농민들과 함께 고부 관아로 쳐들어갔다. 놀란 군수 조병갑은 줄행랑을 놓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큰 문제는 양극화이다. 토지가 소수에 불과한 대지주의 손아귀에 집중되자, 극빈자가 양산되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과잉산업화로 인한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다.

 

사회 정의가 실종된 것도 큰 문제이다. 그때는 전정, 군정 및 환곡이라 불린 수취체제 전반의 모순이 누적되었다. 현재도 재벌들의 온갖 횡포와 탈세 등 적폐가 매우 심각하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19세기 말에는 부패하고 외세의존적인 기득권층이 국운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지금은 재벌과 일부 전문가집단이 문제의 근원이다.

 

123년 전, 참다못한 동학농민들이 들고일어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전봉준을 비롯해 김개남, 손화중과 같은 평민 지식인들이 선두에 나섰다. 그들은 ‘보국안민(輔國安民)’, 곧 나랏일을 도와 사람이 편히 살 방도를 찾으려 했다.

 

1894년 가을, 서둘러 추수를 마친 전봉준 등은 결연한 마음으로 집을 떠났다. 승리를 가늠할 수 없는 길이었다. 그러나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아,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들은 온 힘을 다해 외세부터 몰아내기로 했다. 그러나 최신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이 앞길을 가로막았다. 일본군은 수만명의 동학농민군을 무참히 살해했다. 전봉준 선생도, 손화중 선생도 한날한시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나랏일을 그 지경으로 만든 것은 구중궁궐의 왕과 부패한 귀족들이었다. 그들은 갖은 수단을 이용해 하루하루 부귀영화의 나날을 연장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나라는 결국 망하고 말았다.

 

역사의 비극은 그날 하루에 그치지 않았다. 역사의 시곗바늘을 제자리에 돌려놓으려는 숱한 노력이 있었다. 적잖은 성과가 있었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역사는 제자리를 잡고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촛불혁명으로 역사의 겨울이 끝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에 평화의 봄이 오고 있다.

 

항상 역사의 비극을 일으키는 것은 저 잘났다는 지도층이요, 사태를 수습하는 것은 그들의 조롱과 무시를 감내한 시민들이다. 시민들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위력을 발휘한다. 그 진리를 한국 사회가 처음으로 깨달은 사건이 바로 1894년의 갑오동학농민운동이었다.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이라는 믿음이 전봉준 선생을 비롯해 수백만 농민들을 일어서게 만들었다. 권력의 횡포에 시달려온 사람들이, “폭력을 없애, 스스로를 구하기”(除暴救民) 위해 스스로 일어났으니 실로 위대한 일이었다.

 

이런 자각이 어디에서 왔을까? 그 자각은 농민들의 힘겨운 일상생활에서 왔다.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에, 도리어 그들은 “유무상자(有無相資)”, 곧 있는 이와 없는 이가 서로를 돕고 사는 지혜를 얻었다. 그들은 가진 이와 못 가진 이의 원한을 상생(相生)으로 풀고자 했다. 1894년의 동학농민운동은 폭력을 앞세운 반란이 아니라, 쌓인 원한을 넘어서 함께 살자는 운동이었다.

 

그때 집권층은 전봉준과 농민의 함성을 ‘반란’으로 읽는 우를 범했다. 전봉준의 진실은 더욱 깊은 곳에 있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지도자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동학의 2대 교조 최시형 선생이다. 그는 평생 관헌의 눈길을 피해 보따리 하나를 들고 사방을 떠도는 처지였으나, 가는 걸음마다 사랑의 씨앗을 뿌렸다. 하늘도 하늘이요, 땅도 하늘이며, 사람도 짐승도 하늘이라고 했다. 가난한 농부가 들판에서 먹고 마시는 물 한 모금, 밥 한 숟가락도 다 하늘이라고 말했다. 귀천과 유무의 차별에만 익숙한 사람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가르침이었다.

 

전봉준과 그 시절의 농민들은 그 말씀을 금세 이해했다. 가난한 들판에서 함께 땀 흘리며 살아온 사람들이라서 그 진리에 바로 이르렀다.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문화’가 탄생했다.

 

훗날 독립운동 전선을 지킨 백범 김구 선생도 문화를 말했다. “내가 소원하는 것은 이 나라가 군사 강대국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진정 바라기는 우리나라가 문화로서 강대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백범이 말한 문화란 무엇일까. 본래 동학교도였던 그가 꿈꾼 문화란, 최시형 선생이 바랐던 새 세상의 정신적 토대와 다름없었을 것이다.

 

전봉준 선생의 동상 앞에서, 나는 오래전 선조들이 꿈꾸었던 해원상생의 문화를 떠올린다. 우리가 만일 하나의 역사공동체에 속한다면,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위로해야 하지 않을까. 남과 북이 진정으로 화해하기를 소망한다. 사회적 강자와 약자도 깊은 의미에서 다시 만나야 한다.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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