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대한 연구에서 ‘세대(世代)’는 그리 많이 다뤄지는 주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서 태종, 세종, 세조 대 각각에 대해서는 관심과 연구가 많지만, 대를 넘어서 무엇이 전해지고 무엇을 물려받았는지에 대한 세밀한 연구는 많지 않다. ‘역사’가 비교적 긴 시간대를, ‘당대’가 한 시대를 뜻한다면 ‘세대’는 그 중간 정도를 상정한다. 그런 면에서 ‘세대’는, 역사와 개인의 경험을 동시에 포착한다.

 

‘세대’에 주목해야 할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현실의 표면에 드러난 것보다 더 큰 진실을 알려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조선은 존경받고 영향력이 큰 아버지 이성계와 능력 있고 야심 많은 아들 이방원의 주도로 세워졌다. 조선 건국의 주역들은 대개 아버지의 부하이자 아들의 동지였다. 아버지가 사망해도 정치적 공백은 최소화되었다. 문서화된 매뉴얼, 미리 정해놓은 국가 운영의 규칙이 없어도 별문제가 없었다. 아들이 건국 과정의 우여곡절을 함께했고 그것들에 대처했던 경험을 가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것이 없는 3대째 손자이다.

 

전통시대 왕조에서 매우 중요한 시점이 세 번째 왕이다. 그의 리더십은 그 개인의 운명을 넘어서 나라의 운명과 밀접히 관련된다. 세종은 조선의 4대 왕이지만 할아버지 태조와 아버지 태종에 이어서 실질적인 3대이다. 그의 탁월한 리더십으로 조선은 번영의 기틀을 마련했다. 지금으로 치면, 그는 산업, 문화, 조세 및 국방 정책 모두에서 홈런을 쳤다. 하지만 그런 성취가 예정되었거나 당연했던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큰 성취를 이룬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경험과 능력을 손주도 가졌기를 바랄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세종의 정치적 성공은 예외적이다. 조선은 운이 좋았다.

 

3대가 내리 훌륭해도 그것으로 모든 것이 좋으리란 보장은 없다. 조선시대, 특히 조선 후기에 한 가문이 일어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그것은 반드시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성공한 가문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준 사항들이다. 하나는 대를 이어 문과 합격자가 나오는 것이다. 지금은 문과 합격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체감하기 쉽지 않아서 그것을 사법시험 합격과 비슷한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로 따져보면 과거에 300명쯤 뽑을 때 사법시험이 오히려 조선시대 생원·진사 시험과 비슷하다.

 

문과 합격자 수는 생원·진사 시험 합격자의 30% 정도에 불과했다. 조선시대 양반집 자식들은 열심히 공부해야 했다. 지금은 부자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기 재산을 물려줄 수 있지만, 조선시대 고위 관직자는 자신의 문과 합격증을 자식에게 줄 수 없었다. 사회적 리더가 되기 위한 분명하고 공정한 최소 기준이 있었던 것이다.

 

과거 합격보다 더 어려운 것은, 과거에 합격한 후 나라에 뚜렷한 공을 세우거나 나라를 위해서 희생한 사람이 가문에서 나와야 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안동 김씨 가문이 일어날 수 있었던 데에는 병자호란 도중에 우의정 김상용이 강화도에서 순절했던 것이 일조했다. 그의 동생 김상헌이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끌려가 6년간 감옥에서 고초를 겪은 것도 형의 의로운 죽음에 더해졌다.

 

19세기에 조선은 여러 면에서 쇠퇴했다. 이때 조선 정치를 주도했던 것이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대구 서씨 같은 세도가문들이다. 그런데 이들이야말로 긴 세월 동안 위의 조건을 충족시켰던 가문들이다. 얼핏 생각하면 이런 가문들로 채워진 조선 정치는 잘돼야 했을 듯하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후대로 내려올수록 사회적 양극화가 지배층의 신진대사를 막아버렸던 것이다. 개별 가문의 지속적 영광이 나라의 번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재벌 3세의 ‘갑질’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우연한 일도 아니다. 오히려 언론 환경이 나아지고 사람들의 인권 감수성이 높아진 것이 원인일 것이다. 한국은 식민지에서 해방을 맞은 이후 이제 3대 혹은 4대째이다. 그것은 비단 재벌들만 그런 것도 아니고, 남한만 그런 것도 아니다. 최근에 이미지 변신 중인 북한의 최고 권력자 역시 창업주의 3세이다. 이 때문에, 요즘 누구나 다 아는 ‘그녀’의 갑질은 사회적, 역사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많은 자료들에 따르면 한국은 훨씬 오래된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에 비해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새로운 생각과 기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주체들의 사회적, 경제적 등장이 억압되고 있다는 말이다. 슘페터가 주장했듯이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지속되는 창조적 파괴와 혁신의 체제이다. 한국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한다. 그런 한국이 나라의 운명을 몇몇 집안의 생물학적 3세들과 그들 배우자에게 기대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올림픽 출전 선수를 선별하면서 20년 전 우승팀의 후손을 뽑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라고 묻는 버핏의 유명한 질문도 똑같은 뜻이리라. 한 가지 더. 그들을 노골적으로 편드는 거대 언론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하지만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들 언론사주도 3대째이다. 조선은 건국 후 400년이 지나서야 세도가문들이 등장했다. 한국은 이제 겨우 70년이다.

 

<이정철 한국국학진흥원 연구원>

'역사와 현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에서 ‘3대째’란  (0) 2018.05.17
일본사 감상법 ②  (0) 2018.05.10
녹두 전봉준 선생의 동상 앞에서  (0) 2018.05.03
갑을 위한 예의만 존재하는 나라  (0) 2018.04.27
봉건제와 ‘수저론’  (0) 2018.04.19
일본사 감상법 ①  (0) 2018.04.12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