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 경향신문 지면에 전 독일 뮌스터대 송두율 교수의 칼럼이 실린 것을 보았다. 제목이자 주제는 ‘정치와 진정성’이었다. 최근에 남북 정상이 만나 나눈 대화 중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비핵화와 관련해서 했다는 말과 관련해서 쓴 글이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정치에서의 진정성을 강하게 비판하는 입장들이 있고, 또 그런 입장들이 현실을 더 잘 설명하는 듯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진정성에 의거한 정치의 복원을 위한 기획들이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그런 노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1차 세계대전의 재앙을 체험한 막스 베버가 정치인의 덕목으로 정열, 책임감 및 균형감을 꼽았는데, 자신은 여기에 진정성을 추가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6·13 지방선거 결과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 원고를 쓰기에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이 이번 선거는 처음부터 여당에 유리했던 것으로 보인다. 야당이 주장했듯이 최근의 남북 관계 개선이나 대통령에 대한 높은 지지율도 여당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보다 더 주목할 것은 이전 여당인 현 야당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이라고 생각된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이, 자신들이 배출한 두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가고 수사를 받는 상황에 있는데도 ‘친박’으로 자처했던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에 사람들은 실망을 넘어서 어이없어한다. 요컨대, 사람들은 그들에게서 어떤 정치적 진정성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편, 현 여당과 대통령의 행동에 대해서 야당은 ‘쇼’를 한다고 여러 번 비난했다. 특히 대통령이 소통이 아니라 ‘쇼통’을 한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진정성 없는 가식적 행동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야당의 이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국민들 다수는 대통령의 행동에 대해서 높은 진정성을 가진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모두가 정치에서 진정성이 가지는 힘을 보여주는 양상들이다.

 

정치에서의 진정성은 조선시대에도 대단히 중요한 주제였다. 적어도 16세기 중반 이후 조선 정치의 중심세력은 사림이다. 그들이 정치적 정당성이라는 명분을 장악했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그런데 그들은 정치적 주체가 되기까지 적어도 70년 가까이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지금 우리가 ‘사화(士禍)’ 즉 선비들의 화라고 부르는 사건들이 계속 이어졌다. 올해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70년이다. 70년은 짧지 않은 기간이다.

 

그런데 최초의 사화인 무오사화(1498)부터 선조가 즉위(1567)하기까지 단순히 사화만 이어졌던 것은 아니다. 이 기간에 조선의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사상과 세계관을 정립했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조선시대 지식인에 대해서 떠올리는 전형적인 모습도 이때 만들어졌다. 그것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당대의 지식인들인 선비는 자신들의 정치·사상적 정당성을 마련하지 않고서는 불의(不義)한 시대를 견뎌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시련을 겪으며 그들은 자신들을 진정성으로 무장했던 것이다. 학자들은 그들이 만들어낸 사유 체계를 ‘조선성리학’이라 부른다.

 

이황이 쓴 글들 속에는 당대 지식인들의 고민이 철학의 언어로 정리되었다. 이황은 중국에서 받아들인 주자학을 학문적 도구 삼아 당대 조선의 정치적 상황과 지식인들이 처신해야 할 바를 정리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정리해낸 성리학의 핵심 논리인 이기론(理氣論)이 ‘원본’인 주희의 생각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이황이 그것을 몰랐을 리 없다. 하지만 그에게 최종적으로 중요했던 것은 주희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보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번역하면, 사림은 선한 세력이고 당대의 집권세력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선한 사림이 결국 승리할 것이고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 그의 철학적 언어에 대한 정치적 해석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황은 사림을 정치적 진정성을 가진 선한 세력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사림과 그 반대편을 근본적 갈등관계로 만들었다. 이것은 이황 사후에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그의 사상적 후예들은 집권 이후에 심각한 정치적 갈등인 당쟁을 겪었다. 그 근본 원인 중 하나는 자기 당파만 진정성을 가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진정성이 곧 갈등의 원인은 아니다. 문제는 그 진정성을 자신들만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비롯될 것이다. 역사까지 들출 필요도 없다. 개인의 일상에서 우리가 반복해서 확인하는 것은, 진정성이 결코 한 곳에만 있지도 않고, 과거의 진정성이 지금 진정성의 근거일 수도 없다는 것이다.

 

중국의 정치 관련 고전인 <서경>에는 ‘선무상주(善無常主)’라는 말이 나온다. 선에는 항구적인 주인이 없다는 뜻이다. 진정성이 없는 정치는 분명 바른 정치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정치적 진정성은 유일하지도 않고 누군가에 의해서 항구적으로 독점될 수도 없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야당이 정치적 진정성을 회복하길 바란다.

 

<이정철 한국국학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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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