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중순에 6일 일정으로 만주에 다녀왔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경상북도 출신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자취를 살펴보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영화 <암살>의 모델이 되었던 남자현 여사(1872~1933)가 비교적 알려진 분이지만, 여성으로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은 당연히 남성들만큼 많다. 특히 만주에서 그것은 어김없는 사실이었다. 식민지시대 만주에서 독립운동의 단위는 남자 개인이 아닌 만주로 망명해 온 집안 모두였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독립투쟁을 하는 동안에 여자들은 노인과 아이를 부양했고, 때로는 ‘활동’에 직접 참여했다.

 

영화 <암살>

 

실제로 여성들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왜냐하면, 그 시절 만주에서의 독립투쟁은 크게 보면 두 세대로 이어진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망명을 단행했던 분들 대부분은 해방까지 살지 못했다. 대대로 수백년 살던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겪어야 했던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초가 그들의 수명을 단축했다. 실제로 무장투쟁에 나서고 그들을 지원했던 이들은 부모 손에 이끌려 열 살이 되기 전에 만주에 왔던 아이들이다. 이번 답사에 그 자취를 살폈던 석주 이상룡의 며느리 허은 여사(1907~1997)나, 일동 김동삼의 며느리 이해동 여사(1905~2003) 같은 분들이 그에 해당한다. 여성들이 이 두 세대를 이어주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그 시절 만주에서 독립투쟁을 했던 분들이 겪었던 고초의 수준이다. 답사가 여성 독립운동가들에게 초점을 맞추었기에 그 점이 더 현실적이고 강렬하게 다가왔다. 남자들에게는 ‘대의명분’이라도 있었지만, 그들을 뒷바라지하고, 아이를 키우고 노인을 부양했던 여성들에게 독립투쟁은 겉보기에 그냥 막막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고생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해동은 김동삼의 부인, 즉 자신의 시어머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시어머님은 혁명가의 부인으로서 손색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시아버님께서 평생을 국권 회복을 위해 공을 세웠다면, 그 속에는 시어머님 몫도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들은 결코 수동적이지 않았다.

 

답사 내내 한 가지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왜 결과를 기약할 수 없는, 남은 생애 끝까지 계속될 막대한 고초를 자발적으로 선택했을까? 예를 들어 이상룡은 조선이 국권을 잃자 곧바로 망명했다. 뒤이어 가족들이 그를 따랐다. 말이 쉽지, 그의 행동은 매우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그는 안동 임청각의 주인이었다. 임청각 고성이씨는 적어도 17세기 이래 300년 이상 안동에서 가장 부유한 집안 중 하나였다. 이상룡이 고향을 떠날 때 그의 나이는 54세였고, 부인 김우락(1854~1933)은 그보다 네 살이 많았다. 그들이 산 시대는 평균수명이 지금처럼 80세 전후가 아니었다. 명분과 현실을 아울러 고려한다면 이상룡은 고향에 머물며 독립운동단체에 뒷돈을 대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가 대대로 수백년 살았던 곳을, 다시 돌아올 기약 없이 떠난 것은 온전히 신념에 따른 행동이다. 그것은 부인 김우락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1911년에 지은 가사(歌辭)에서 “자신이 비록 여자라도 나라 잃은 울분이 생기는데, 애국지사의 비통함은 당연지사이며, 그러니 망명을 말릴 수 없다”고 말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동체는 이상적 인간형을 창출한다. 이상룡은 조선이 창출한 인간형인 ‘선비’의 행동양식을 보여준다. 물론 ‘선비’는 대개 계급적으로 지주이고 지배층의 일원이다.

 

그런데 조선의 지배층은 지금 대한민국의 지배층과 많이 다르다. 물론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다. 역사를 통틀어 지금처럼 이미 부유한데도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하는 지배층이 또 있었을까. 바로 이 모습이 이 시대 우리 공동체가 만들어낸 인간형이다. 조선시대 선비와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현재의 인간형 사이에 우열을 말하는 것은 섣부르다. 거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리 된 이유를 놔두고 윤리적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너무 뻔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알려진 것처럼 매스로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나눈다. 아래서부터 차례로 말하면 생리, 안전, 소속, 존경, 자아실현의 욕구가 그것이다. 경제적 이익 추구가 대개의 경우 아래 두 단계 혹은 최대 네 단계까지를 포괄한다면, 이상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네 번째나 다섯 번째 단계에 해당할 것이다. 아래쪽 욕구일수록 더 강하고 직접적이며 개인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반면 위쪽 욕구는 생존을 위해 덜 필요하고, 생애의 나중 시기에야 나타나기에 지연될 수 있는 특성을 갖는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적이고 경제적인 욕구를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이렇게 뒤로 미뤄지고, 생물학적 생존에 직접적이지 않은 욕구야말로 우리의 삶을 죽음 앞에서 가치 있게 하는 것임도 분명하다. 그것은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 수준에서도 다르지 않다. 오히려 공동체 수준에서 그것은 더욱 분명하다. 공동체가 유지되려면 경제뿐 아니라 가치나 이상도 필요하다. 답사 내내, ‘다시 나라를 잃으면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또 하나의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정철 한국국학진흥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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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