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민용 기자 vista@kyunghyang.com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너를 다시 만났었지”로 시작하는 그룹 ‘동물원’의 노래가 발표된 것은 1990년이다.

노래 도입부에 지하철이 플랫폼으로 들어올 때의 기계음과 안내방송을 집어넣어 당시로서는 신선한 시도로 평가받았다. 노랫말 속에서 지하철은 세련된 도시의 감수성을 상징하는 공간이었지만 현실 속 지하철은 아비규환의 전장이었다.
같은 해 2월 구로역, 신도림역 등 서울의 주요 지하철역 20곳에는 신종 아르바이트가 등장했다. 만원 객차 안으로 승객을 밀어넣는 ‘푸시맨’이었다. 당시 서울이 인구 1000만명의 도시로 거듭나면서 아침마다 반복되는 출근전쟁은 신문 사회면의 주요 기사로 다뤄질 정도였다.
콩나물 시루, 지옥철 등 지하철의 별칭도 여러가지였다. 급기야 대학생들을 푸시맨으로 고용하는 극단의 조치가 취해진 것이다. 푸시맨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탑승한 이들은 출근전쟁의 승리자였다.

비록 허리가 휘어지는 고통과 호흡곤란을 겪었을지라도 말이다.


 


1984년 5월22일 서울시청역에서 지하철 2호선이 발차를 기다리고 있다. 85년 1~4호선이 완전 개통되면서
지하철은 버스를 앞지르는 대중교통수단으로 거듭났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74년 8월15일 지하철이 개통한 지 36년. 이제 서울뿐 아니라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주요 광역시에도 지하철이 달리고 있다.
71년 처음 공사를 시작, 국내 최초로 개통한 지하철 구간이 바로 서울역에서 청량리역까지 9.5㎞. 71년 착공해 4년 만에 완성됐고 그 후 서울의 지하철 공사는 계속됐다.
1호선에서 4호선까지 서울의 주요 지하철 노선은 70년대 초반 이미 확정돼 있었다. 사실 지하철은 1899년 생긴 전차를 대체하는 교통수단으로 봐야 한다. 1960년대 초반부터 전기기관차, 지하철도의 필요성이 대두됐으며 버스, 자동차 등 전차보다 속도가 빠른 교통수단이 보급되면서 전차는 68년 11월30일 운행이 중단됐다.

개통 첫해 지하철의 수송분담률은 1.1%에 불과했다. 땅 밑으로 다니는 지하철은 시민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었을 뿐 운송수단으로는 여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직선과 방사선, 순환선으로 서울을 관통하는 1~4호선이 85년 완전 개통하면서 지하철은 버스를 대체하는 교통수단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서울지하철의 수송분담률은 35.2%로 늘어났다. 초창기 잦은 탈선 사고와 지연 운행도 안정화되고, 도로통행량이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지하철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 것이다.

지하철은 서울의 인구지형도 바뀌놓았다. 70년대 강북 대 강남의 인구비율은 2 대 1 정도였지만 순환선인 2호선이 개통하면서 강남과 강북의 인구비율이 유사해졌다. 지하철 노선이 확장될수록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위용은 강화됐다.
현재 9호선까지 개통된 서울의 지하철은 연간 수송인원만 세계 3위, 지하철역 수로는 세계 3위, 운행거리는 세계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여름이면 창문을 반쯤 내린 채, 천장에 달린 선풍기가 돌아가던 낡은 차량들은 이제 사라졌다. 에어컨은 기본이고, 찬 바람이 싫은 이들을 위한 약냉방칸도 운행한다. 좌석도 달라졌다.

2003년 승객 192명이 사망한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이 벌어지면서, 천으로 덮여 있던 좌석은 2006년부터 불연성 소재로 교체되었다. 플랫폼에서 지하철이 드나들 때마다 뿜어내던 후텁지근한 바람을 맞을 일도 이제 사라졌다.
지하철을 자살의 장소로 삼는 이들이 90년대 중반 이후 늘어나면서 2000년대 중반 이후 스크린 도어 설치가 본격화된 것이다. 이제 대부분 역사에는 안전을 위한 스크린 도어가 설치된 상태다. 현재 시각과 더불어 열차의 행선지를 알리는 행선지 안내판에도 변화가 생겼다.

지하철의 최종 행선지가 적힌 플랩이 요란하게 돌아가면서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라고 쓰인 패널에 빨간 불이 들어오던 아날로그식 안내판은 거의 자취를 감추고, 2호선 몇 개 역사에서만 볼 수 있을 뿐이다.
90년대 후반 착공·개통한 2기 지하철의 주요 역은 대부분 LCD, LED 전광판으로 열차 행선지와 현재 열차의 위치를 알 수 있게끔 표시하고 있다. 지하철 객차 안도 끊임없이 전화 통화를 하거나 휴대전화나 휴대용 영상기기를 들고 동영상을 보는 이들로 가득차게 되었다.

‘동물원’의 노랫말 속 낭만은 사라졌다. 파편화된 도시인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공간, 그곳이 지하철이다.

저작자 표시
신고

'경향신문 역사시리즈 > 100년을 엿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41) 아르바이트  (0) 2010.08.08
(40) 여성의 이름  (0) 2010.08.01
(39) 지하철  (1) 2010.07.25
(38) 여름방학숙제  (0) 2010.07.18
(37) 봉숭아꽃 물들이기  (1) 2010.07.11
(36) 바캉스  (0) 2010.07.04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