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민용 기자

ㆍ참교육 선언…전교조 이념 기반으로

교원노조의 효시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결성된 ‘4·19 교원노조’다. 3·15 부정선거 등 여러 규탄집회를 열면서 교직원의 이해를 대변할 집단의 필요성이 제기돼 결성된 단체다.

그러나 제2공화국 출범 직후 1961년 1월 국무총리 장면은 공무원과 교사의 노동조합 설립 추진운동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관련자들을 파면·해임한다.
군사정권이 출범한 이후에는 더욱 암울한 시절을 보낸다. 5·16 쿠데타에 의해 1500여명의 교사가 구속·해직된 후 1980년대 초반까지 근 20년의 세월 동안 ‘교사운동’과 ‘교육운동’은 기나긴 암흑기를 걷는다. 이 시기 교육은 정권 이데올로기의 홍보 수단이 되곤 했고, 교사들은 강제적으로 전달자의 역할을 맡아야 했다.

그러다 1980년대 초 YMCA와 흥사단 등을 중심으로 교사들의 작은 모임이 하나둘 만들어지면서 교사들의 교육운동이 기지개를 켠다. ‘서울의 봄’을 보내며 교사들이 기나긴 동면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것.

특히 1985년 여름 실천문학사에서 발행한 비정기 간행물 ‘민중교육’ 필화사건으로 수십명의 교사들이 해직되거나 징계를 받으면서 조금씩 실체를 보여주기 시작한 교사운동은 이듬해 5월10일 ‘교육민주화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교육민주화 선언’은 그동안 억눌려 지낸 교사들에게 자기 정체성을 찾게 해주는 동시에 교사운동의 조직화와 대중화의 발판을 마련해준다.

1987년 6월 불어닥친 민주화운동 바람은 사학민주화와 교육민주화 심지에 불씨를 댕긴다. 자연스레 전국적인 조직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그해 7월27일 전국 각지에서 광주로 모여든 40여명의 교사대표가 ‘민주교육추진 전국교사협의회’(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전신) 설립을 결의하고, 8월13일 서울에서 600여명의 교사가 참여해 ‘전교협’ 준비위원회를 구성한다. 이후 4차례의 회의를 거쳐 9월27일 마침내 서울 한신대학교에서 700여명의 교사가 모인 가운데 ‘전교협’ 창립식이 열린다.

지금은 고인이 된 윤영규 선생은 당시 회장을 맡으면서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을 추구하고, 교사의 의지와 힘을 모아 교육의 자주성과 학교의 민주화를 이끌어갈 것”을 선언한다.
‘전교협’의 이러한 참교육 선언은 “그동안의 교육이 학생들에게 더불어 사는 삶을 가르치기보다는 입시라는 목적을 위해 서로를 경쟁자로만 여기는 비인간적 교육이었다는 반성과 함께 군사독재정권이 교육을 체제 유지의 수단으로 악용해 비민주적 교육을 강요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나온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훗날 전교조의 이념적 기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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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