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총 30명의 시장이 거쳐갔습니다.
이 자리가 ‘대선으로 통하는 지름길’로 비유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요. 민선 1기 조순 시장과 후임 고건시장이 대권주자로 꼽히기도 했고, 제4대 윤보선 대통령 그리고 현 이명박 대통령이 시장의 자리를 디딤돌로 대통령에 선출됐기 때문이지요. 이승만 정권의 2인자로 부통령까지 오른 이기붕씨도 서울 시장을 했답니다.
10월 26일 치러지는 재·보궐선거 중 서울시장 선거는 유권자 수 837만명으로 단연 최대규모입니다. 이번 10.26 보궐선거로 서울시민들은 34대 31번째 시장을 뽑게 됩니다.
‘안철수 열풍'을 낳았고 전격적인 후보단일화로 정치권에 큰 파장을 몰고 왔습니다. 복지가 선거의 화두로 떠올랐고 정당이 없는 시민의 후보가 범야권단일후보로 결정되는 진기록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역대 서울시장 선거부터 1995년 지방자치 시대가 열린 이후 5번의 서울시장 선거까지 그때마다 관통한 화두는 무엇인지 살펴볼까요.


제2공화국 때인 1960년 12월 29일 처음으로 실시된 서울특별시장과 도지사 선거는 투표율 38.8%로 아주 저조했는데, 이는 12월 한달 동안 4회나 선거가 치러졌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 때 당선된 사람이 김상돈 초대 민선 서울시장입니다. 이렇게 탄생한 자치단체와 지방의회는 이듬해 5·16 군사쿠데타로 해산됨으로써 한국의 지방자치는 일단 막을 내렸습니다.

1960년 12월 30일자 신문에 재미있는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의 투표는 '기명투표제'였습니다. 그런데 후보자 이름 옆에 ‘양심적으로 하시오’ 라는 문구가 있는가 하면 ‘김상돈씨. 장기영씨 어느쪽으로 결정할지 생각한 결과 장기영씨로 결정했습니다. 서울시의 살림을 잘해주시오’ 라는 작문이 적혀있기도 했습니다.

투표용지에 담은 진정한 시민의 마음이랄까요.. 하지만 모두 무효일수밖에..ㅠㅠ.


6012303

 
그리고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1990년대로 이동합니다.

마침내 시작된, 명실상부 지방자치제!

1995
6.27 지방선거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테니... 자세한 건 생략하고요.

그 때 눈길을 끌었던 쟁점은
세대교체론이었습니다. 김영삼대통령이 타임지와의 회견에서 차기 대선에서의 세대교체를 주장하자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이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서, 선거 종반전 최대쟁점으로 부각됐습니다.

당시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조순 전 서울대 총장이었습니다. 흰 눈썹, '산신령'으로 불리던... 분이셨죠.
조순 후보는
젊은 사람도 공부 안 하면 늙는다며 설득력 없는 얘기라고 반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결과는 조순 후보의 당선. 


 19956214



1998
6.4 2기 지방선거는 50년 만의 여야 정권교체 이후 권력 변동기에 치러지는 것이어서 실질적으로 새정권의 중간평가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여야 모두에게 '운명이 달린 민심잡기'가 아닐수 없었는데요.

최대쟁점은 경제실정 책임론입니다.
국제통화기금(
IMF) 관리체제 편입으로 국가부도위기 사태를 초래한 책임의 소재가 어디 있는지 치열한 공방이 펼쳐졌습니다.
시장선거랑 딱히 상관은 없는 이슈였지만... 서울시장 자리가 자리인만큼, 청와대 앞에서 벌어질 공방이 시청 앞에서 벌어진 셈이랄까요.

 

98519일 4면


선거전이 본격화 되면서 이색 선거운동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 IMF 한파로 사회 분위기가 가라앉은데다 선거법이 바뀌어 개인홍보물을 돌릴수 없게 되어...  유권자들을 유인하는 튀는 수단을 총동원했습니다.

 

985234


2002
6.13 지방선거 서울시장선거는 한나라당 이명박후보와 민주당 김민석후보의 초박빙 대결이었습니다.
 
최대쟁점은 이명박 후보가 내세운 청계천 복원 프로젝트였습니다. 김민석후보는 원형복원도 아니고 혼란만 부채질할 졸속공약이라며 장기 플랜을 짜야 한다고 주장했네요...

[6.13 지방선거 최대쟁점은 청계천 복원] 

서울시장 선거는 초박빙이다. 한나라당 이명박(李明博) 후보와 민주당 김민석(金民錫) 후보의 표밭 공략도 하루하루 ‘숨어있는 1인치’를 찾는 쪽에 맞춰지고 있다.
두 진영에서 파악하고 있는 강세 지역은 은평·서대문·종로·서초·강남·송파(한나라당), 도봉·강북·노원·성북·관악·구로·금천(민주당)으로 엇갈린다. 정확하게 ‘X’자로 교차한다. 


2002
년 지방선거는 월드컵에 묻혀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지방의 행정을 맡을 수장과 이를 견제할 지방의원들을 뽑는데 관심이 있는 유권자는 소수였습니다. 유권자의 무관심은 선거과정에 불법과 타락이 스며들 빈 틈을 열어준다는 것임을 보여줬던 선거.... 선거부정 유죄 판결을 받는 사례가 속출했습니다. 
 

[정동칼럼] 지방선거와 히딩크 

히딩크 감독의 목표는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다. 지방선거에 임하는 유권자들의 목표는 주민자치에 걸맞은 민주적이고 알뜰한 살림살이로 주민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줄 지방 선량을 뽑는 것이다.
목표는 분명하다. 목표에 다가가는 첫걸음은 히딩크와 유권자가 각각 선수와 선량을 뽑는데 만전을 기하는 일이다. 정치수준을 높여 세계 16강의 정치선진국이 되기를 원한다면 히딩크의 고민과 안목으로 정치 선량을 골라내야 한다. 


20065.31 서울시장선거열린우리당 강금실후보와 한나라당 오세훈후보의 집토끼 복원산토끼 잡기로 선거전략을 압축할수 있습니다. 강후보는 전통적 지지층 호남세력과 여성표를 끌어오기에 고심했고 오후보는 젊은층 등으로 한나라당의 경계를 넓히는 데 주력했습니다



강금실
 
VS 오세훈, 시장선거 캠프전략   

열린우리당 강후보의 고민은 ‘빠진 집토끼’에서 시작된다. 앞서가는 오후보 추격의 발판이 젊은층·호남·개혁세력의 재결집 여부에 달려있다는 1차 판단이다.
지난 2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의 호남 원적자 지지도에서 강후보(33.8%)는 오후보(39.7%)에 밀렸다. 20대도 강후보(41.9%)는 오후보(36.1%)의 추격권에 들어갔다. 전통적 강세지역인 서울의 ‘동북3성’(도봉·노원·강북)도 ‘우세’ 정도로 둔화돼 있다.

 
2010년 민선56.2 서울시장선거민선 4기와는 사정이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오세훈 후보와 한명숙 후보 간 격차는 0.6%에 불과했습니다.
서울시장에 재선임된 오세훈 후보는 선거 결과에 대해 "사실상 패배했다는 겸허한 마음으로 오늘의 승리를 받아들이겠다."고 당선소감을 발표했습니다. 이로써 오세훈 시장은 최초의 민선 연임 서울시장이 됐습니다.

하지만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말도 탈도 많았습니다. 5월 9일 광역단체장후보 KBS TV토론이 공정성’ 논란으로 무산되면서 TV토론에 소극적인 여당 측과 KBS간 이심전심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습니다사태의 발단은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든 방식으로 여당 후보들에게 더 많은 발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면서 시작됐습니다.
 

                    2010년 5월 10일 2


자, 이제 보궐선거가 일주일 정도 남았군요.

이번 선거에서 서울 시민들은 누구를 선택할까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지난 칼럼===== > 유기정의 '옛날신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찾은 설날  (1) 2012.01.19
연말 연예계 시상식  (0) 2011.12.26
역대서울시장 선거  (0) 2011.10.18
한가위 놀이의 변천  (0) 2011.09.08
증시폭락의 역사  (0) 2011.08.10
한강홍수史  (0) 2011.07.28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