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머리 나쁜 사람을 ‘새대가리’ ‘닭대가리’라 놀린다. 서양인들도 ‘Birdbrain’이라 손가락질한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인들이 새와 닭을 폄훼한다면 그것은 누워 침뱉기 격이다. 왜냐. 혁거세(신라)·주몽(고구려)·수로(가야) 등이 모두 난생신화의 주인공들이다. 동이계는 원래 새를 숭상하는 종족이었다.

 

 

닭은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박혁거세가 태어난 우물이 바로 계정(鷄井·나정)이다. 부인 알영은 같은 날 계룡(鷄龍)의 왼쪽 갈비에서 태어났다. 알영의 입술은 닭부리 같았다. 사람들이 월성의 북천에서 목욕시키자 부리가 튕겨져 나갔다. 둘은 13살 때 결혼해서 남해차차웅(재위 4~24년)을 낳았다. 경주 김씨를 비롯한 신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는 어떠한가. 기원후 56년 금성(경주)의 서쪽 숲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가보니 나뭇가지에 황금궤짝이 걸려 있고 그 아래에서 흰닭이 울고 있었다. 궤짝을 열어보니 사내아이가 있었다. 금궤짝에서 태어난(金) 아이(閼智)라 해서 ‘김알지’라 했다. 신라를 ‘계림’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다. 박혁거세와 알영의 고사에 계정과 계룡이 등장하는가 하면, 김알지 역시 닭이 우는 숲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도 신라의 닭 사랑은 유명했다. “천축국(인도)에서는 신라를 구구타예설라라 한다. 구구타는 계(닭)를, 예설라는 귀하다는 뜻의 귀(貴)를 일컫는다. 천축인들은 ‘신라인이 닭신을 숭상해서 깃을 꽂아 장식한다’고 신기하게 여겼다.”(<삼국유사>) 조선시대 사람들도 닭과, 닭 볏처럼 생긴 맨드라미를 그린 그림을 서재에 걸었다. 관 위에 관을 더한다는 ‘관상가관(冠上加冠)’의 뜻이니 ‘출세운, 관운이 터져라’는 바람을 담은 것이다. 시계가 없던 시절 수탉의 울음소리는 어둠을 뚫고 밝은 세상의 개막을 알리는 서곡이었다.

 

그런데도 닭은 ‘재수 없는 닭대가리’쯤으로 폄훼되고 있다. ‘암탉이 울면 어쩌고’ 하는 ‘여혐속담’이 여전한데 요즘엔 너도나도 ‘닭’이라는 성을 붙여 현직 대통령을 풍자하고 있다. 무지몽매한 혼군(昏君)의 실정을 애꿎은 ‘닭’에 견주니 가만있는 닭으로서는 ‘의문의 1패’를 당한 셈이다. 해마다 10억마리의 닭이 희생되는 판이다. 설상가상으로 요즘 2600만마리의 닭이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말 그대로 떼죽음을 당했다. 새삼 어미닭도 병아리의 아픔을 보고는 애틋한 모정을 느낀다는 최근의 연구결과를 한 번쯤 떠올려본다. 정유년이 시작됐지만 닭의 수난이 계속되고 있다.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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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