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 1990년 청와대 경내의 북악산 기슭에서 표석 하나(사진)가 발견됐다. 예부터 청와대터가 천하제일의 명당이었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전직 대통령들의 불행한 말년을 두고 청와대 풍수가 좋지 않다느니 하는 말이 떠돌고 있었다. 전임자인 전두환 대통령이 ‘기(氣)가 서쪽으로 빠져나간다’고 해서 청와대 현관을 서향에서 남향으로 바꿨지만 백담사로 ‘유배’당하지 않았던가. 마침 조선총독의 거처였다는 등 이런저런 이유로 청와대 본관 및 관저를 분리하고 신축하는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 와중에 좋은 조짐의 표석이 발견됐으니 반색할 수밖에 없었다.

 

 

따지고 보면 청와대터는 길지 중 길지였다. 고려의 3경 중 하나인 남경의 궁궐이 있었던 곳이니까…. 1096년(숙종 원년) 김위제는 <도선기>를 인용, “목멱양(남산 북쪽 평지)에 도성을 건설하면 태평성대를 이룬다”고 주장했다. 조선 개국 직후인 1394년(태조 3년) “고려 숙종이 경영했던 옛 궁궐터가 너무 좁아 그 남쪽에 궁궐(경복궁)을 정하고…”라는 <태조실록> 내용이 보인다. 경복궁 북쪽은 지금의 청와대터를 뜻한다. 그러나 조선조 들어 이곳에 회맹단이 들어선다. 회맹(會盟)은 혁명(반정) 후 임금과 신하가 모여 충성을 다짐하는 의식이다. 희생물의 피를 입술에 바르며 “배신하면 피의 보복을 당한다”고 서약한다. 청와대터는 천하제일의 복지에서 충성맹세의 장으로 변질된 것이다. 예컨대 1·2차 왕자의 난으로 정권을 잡은 태종은 5차례나 충성서약을 받는다. 훗날 일제는 풍수상 목에 해당되는 곳에 총독관저(청와대)를, 입의 구실을 하는 곳에 총독 집무실(구 국립박물관)을 지었다. 입을 틀어막고 목을 조른 것이다. 키도 작은데(해발 342m) 독불장군처럼 떡하니 버티고 있는 북악산의 자태가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청와대 주인(대통령)들이 거만하고 고집불통형인 북악산을 닮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갖가지 방책으로 청와대 풍수를 바꾸려 했다. 그러나 단적인 예로 관저와 집무실을 뚝 떨어뜨린 결과는 어떤가. 지금 불통의 끝을 보고 있지 않는가. 새삼 “착한 일을 한 집안에는 경사가, 그렇지 못하면 재앙이 찾아온다(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는 <역경>의 말이 떠오른다. 풍수가 진정으로 중시하는 것은 땅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이다. 풍수가 최창조 교수(전 서울대)는 “풍수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지당한 말이다.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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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