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상했다. 국정조사 청문회를 통해 국회의원들은 몇 번이나 기업인들에게 확인을 받으려 했다. ‘앞으로 더 이상 정경유착의 비리를 저지르지 않으실 거죠?’ ‘그렇게 안 하실 거라고 대답해 주실 수 있나요?’ 그런데 기업인들 중 누구도 시원하게 ‘네’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과거에 대해서 반성하고 있다는 답변이 다였다. 그들은 1950년대부터 지속되어 온 정경유착의 교훈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한 연구자는 1970년대 한국과 필리핀을 비교 연구했다. 당시 두 나라는 모두 ‘부패’로 유명한 독재국가였다. 그런데 한 나라는 경이적인 경제발전을 이뤘고, 다른 한 나라는 그렇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연구자가 주목한 것은 한국에서의 부패는 단순한 부패가 아니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부패였다는 것이다.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단계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부패를 통해서 그 단계를 줄여나갔다는 것이다. 좀 쉽게 얘기하자면, 세무서에서부터 구청, 그리고 정부 내 관계 부처에 이르기까지 접수를 하고 승인을 받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뇌물’을 통해서 그 시간을 단축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뇌물은 부패의 도구가 아니라 빠른 성장을 위한 ‘윤활유’ 역할을 한 것이다.

 

기업 총수들과 재계 관계자들이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그렇다면 그렇게 좋은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왜 ‘김영란법’을 만든 것일까? 김영란법에 많은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누구도 이에 대해서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그것은 뇌물이 윤활유가 아니라는 점을 누구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윤활유는 일부 기득권 세력에게만 작동하는 윤활유였다.

 

196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는 ‘부동산 불패’라는 신화가 계속되고 있다. 수출을 늘리라고 들여온 차관, 베트남에서 희생된 민간인들과 파병된 젊은 군인과 근로자들의 피로 벌어들인 돈, 뜨거운 중동에서 땀 흘려 벌어온 돈의 많은 부분이 부동산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그 돈이 부동산으로 갈 때마다 한국 사회는 경제위기의 몸살을 앓았다. 1960년대 말 부실기업의 위기, 1970년대 말 외채 위기가 모두 그런 사례였다.

 

부동산 불패의 신화는 ‘치맛바람’이라는 신조어도 만들어냈다. 기업뿐만 아니라 개개인도 부동산 투기를 통해서 일확천금을 노리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도 ‘그때 저 땅 사놨으면 지금 이렇게 안 사는데’라는 푸념이 어렵지 않게 들린다. 그런데 왜 못 샀느냐고? 은행에서 돈을 빌려야 하는데, 그 돈을 빌리려면 뇌물을 주거나 정치권에 연줄이 있어야 했다. 연줄이 없었던, 아니면 연줄을 어떻게 만드는지 몰랐던 사람들에게 부동산은 그저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혈연과 지연, 그리고 학연을 통한 인맥은 성공의 지름길이었다. 그리고 뇌물은 그러한 인맥을 더 끈끈하게 만들어주는 동아줄이 되었다. 누가 어떻게 장관이 되었는가를 면밀히 살펴보면 전문성과 경험보다는 최고 권력자와의 인연이 그 핵심에 있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1987년 민주적인 헌법이 마련된 지 30년이 다 되었지만, 7억원이면 부총리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청문회를 통해서 흘러나오고 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헌법의 원칙인 공정경쟁하의 자유시장과 민주주의는 사라져버리고 불공정한 시스템이 관행이 되어 버렸다. 이승만 정부하에서도, 박정희 정부하에서도 이러한 원칙은 절대 지켜지지 않았다.

 

1960년대 초 부패한 기업인들, 1970년대 초 부실기업을 초래한 기업인들, 그리고 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를 초래한 기업인과 관료들에게 모두 면죄부가 주어졌다. 어느 정도의 뒷거래가 있었는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경제를 살리겠다’는 명분하에서 모든 결정이 합리화되었다.

 

‘헬조선’이니 ‘금수저’니 하는 말에 대해 기성세대의 일부는 진저리를 친다. 자기가 노력할 생각은 안 하고 세상 탓만 한다는 것이다. 왜 젊은이들이 이런 얘기를 할까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촛불시위에 나온 한 학생은 방송 인터뷰에서 ‘정유라 사건’ 때문에 나왔다고 했다. 이들은 정유라 사건을 보면서 대통령보다도 더 심한 자괴감이 들었을 것이다.

 

대선이 예정보다 빨리 코앞에 다가오면서 다시 경제민주화와 복지의 슬로건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단언컨대 한국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서 정부가 돈 주기만 기다리지 않는다.

 

우리 현대사에서 이 땅의 구성원들은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해 열심히 싸웠고, 경제성장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열심히 일한 결과가 그대로 나타날 수 있도록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헌법 정신의 정상화이다.

바보야, 문제는 공정성이야.

 

박태균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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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