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 야마나카(山中) 상회라는 고미술 무역상이 있었다. 뉴욕(1894년)에 이어 보스턴, 시카고, 런던, 파리, 베이징 등에 지사를 둘 만큼 세계적인 골동품 거상이었다. 이 거대자본과 3차례 맞서 2승1패의 성적을 거둔 이가 있었으니 바로 간송 전형필(1906~1962)이다. 간송은 1933년 야마나카 상회가 주최한 경매에 나서 쓴잔을 마신다.


‘불국사 전래’라는 통일신라 3층 석탑(6000원) 등 석조물 3점을 1만2750원에 낙찰받는다. 그러나 훗날 이 석탑의 연대가 고려시대로 판명돼 서울시 유형문화재(제28호) 지정에 그쳤다. 1934년 간송은 오사카에서 야마나카 상회의 대표인 야마나카 사다지로(山中定次郞·1866~1936)와 담판을 벌인다. 혜원 신윤복의 풍속도 30점을 구입하고자 한 것이다. 야마나카는 “멀리서 오셨으니 1만원 깎아주겠다”면서 4만원을 불렀다. 그러나 간송은 “2만원 이상은 안된다”고 딱 잘라 말했다. 더는 양보가 없자 간송은 “좋은 그림을 친견했으니 눈이 호강한 것으로 만족하겠다”고 털고 일어났다. 야마나카가 간송을 붙잡고 “서로 1만원씩 양보하자”며 3만원을 불렀다. “당장 현금이 없다면 6개월 어음도 좋다”고 수정제안했다. 그러나 간송은 “외상은 싫다. 현금 2만5000원에 하자”고 요지부동이었다. 야마나카는 간송의 배짱에 혀를 내두르며 “내가 양보하겠다”고 손을 털었다. ‘단오풍정’ ‘월하정인’ ‘월야밀회’ ‘주유청강’ 등 혜원의 풍속도화첩(국보 135호)을 확보한 순간이었다. 1승1패. 1936년 11월22일 서울에서 간송과 야마나카 상회 간 3차전이 벌어진다. 대상은 참기름병으로 쓰였다가 기화(奇貨)로 판명된 조선백자(사진)였다. 참기름병이었을 땐 1원이었지만 60~3000원으로 가격이 뛰었다. 경매의 최초 예상가는 6000원이었다. 경매시작과 함께 순식간에 ‘1만원’까지 뛰었다. 간송과 야마나카 상회의 양자대결로 펼쳐졌다. 500원 단위로 뛰다가 1만4500원이 되자 다시 10원 단위로 쪼개졌다. 자존심 대결이었다. 간송이 ‘1만4580원!’을 부르자 야마나카 측이 침묵을 지켰다. 국보 294호 조선백자는 당시 서울의 고급한옥 15채 가격으로 간송의 품으로 돌아왔다. 2승1패.

최근 야마나카 상회가 판매한 조선의 도자기·석물 도록 사진과 관련기록을 정리한 논문(주홍규의 ‘야마나카 상회와 일본으로 유출된 한국문화재’)이 나왔다. 이 논문이 나온 김에 야마나카 상회를 상대로 펼친 간송의 분투를 떠올려본다.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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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