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위(魏)나라 귀공자가 수레를 타고 가다가 이름난 현자 전자방(田子方)을 만났다. 이름난 현자라지만 가진 것도 없고 지위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귀공자는 수레에서 내려 공손한 인사로 존경을 표했다. 하지만 전자방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괘씸하게 여긴 귀공자가 따졌다.

 

“부귀한 사람이 무례합니까, 미천한 사람이 무례합니까?”

귀하신 이 몸이 먼저 인사를 했는데, 미천한 네가 이럴 수 있냐는 말이었다. 하지만 전자방의 대답은 반대였다.

 

“부귀한 사람이 어찌 감히 무례할 수 있겠습니까? 군주가 무례하면 나라를 잃고, 제후가 무례하면 영지를 잃습니다. 하지만 미천한 사람은 잃을 것이 없습니다.”

<자치통감>에 나오는 이야기다.

 

사회에는 위계가 있고, 위계가 있으면 갈등이 생긴다. 제아무리 수평적인 사회라도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위계는 존재하기 마련이며, 이로 인한 갈등 역시 피할 수 없다. 단지 위계에 걸맞은 덕목을 요구하여 갈등을 줄이려고 노력할 뿐이다. 예컨대 책임, 공정, 포용은 윗사람의 덕목이고, 근면, 성실, 복종은 아랫사람의 덕목이다. 착각하기 쉬운 것은 ‘예의’다. 아랫사람의 덕목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예의는 예로부터 윗사람의 덕목이었다.

 

공자는 윗사람의 예의를 누누이 강조했다. “군주가 신하를 예의로 부리면 신하는 군주에게 충성을 다한다.”(<논어> ‘팔일’) “윗사람이 예의를 좋아하면 백성이 공경한다.”(<논어> ‘자로’) “윗사람이 예의를 좋아하면 백성을 부리기 쉽다.”(<논어> ‘헌문’)

 

맹자도 마찬가지였다. “현명한 군주는 반드시 아랫사람에게 예의를 지킨다.”(<맹자> ‘등문공’) “윗사람이 예의가 없으면 아랫사람이 배우지 않는다.”(<맹자> ‘이루’) 전부 윗사람의 예의를 강조한 말이다. 아랫사람더러 예의를 지키라는 말은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다. 어째서일까?

 

과거의 예(禮)는 단순한 예의범절이 아니었다. 예는 법과 제도, 도덕과 관습, 사소한 에티켓에 이르기까지 사회질서 유지를 위한 모든 규범을 포괄한다. 그 규범은 누가 만들었을까? 윗사람이 만들었다. 그 규범은 누구를 위해 만들었을까? 윗사람을 위해 만들었다. 그 규범을 지키지 않으면 누구의 손해일까? 윗사람의 손해다. 규범을 지키지 않으면 질서가 흔들리고, 질서가 흔들리면 위계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의는 윗사람이 지켜야 한다.

 

예의는 본디 통치의 기술이다. 강제성은 없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힘을 발휘한다. 권력이 하드 파워라면 예의는 원활한 권력 행사를 돕는 소프트 파워다. 예의는 자발적인 충성과 헌신을 이끌어내는 리더의 자질이다. 예의가 없다는 것은 윗사람의 자격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이 나라에서는 윗사람의 예의라는 것을 도무지 찾아보기 어렵다. 어른과 스승과 상사에게 지켜야 하는 예의는 중요하게 여기지만 어린이와 제자와 부하에게 지켜야 하는 예의는 소홀하기 일쑤다. 아랫사람의 예의는 오히려 지나쳐서 문제다. 그놈의 예의 때문에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아닌 걸 아니라고 하지 못한다. 이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만만치 않다. 아랫사람의 예의 없는 행동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여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윗사람을 대하는 예의는 지금도 차고 넘친다. ‘의전’이라는 명분으로 윗사람의 눈치를 보고 비위 맞추는 일을 당연시한다. 국가원수급이라면 또 모를까, 쥐꼬리만 한 권력이라도 있으면 의전을 요구한다. 법규를 무시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의전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불법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재벌 3세의 무례한 갑질도 그중 하나이다.

 

졸부도 아니고 재벌 2세, 3세면 예의바른 행동이 무엇인지 충분히 배웠을 것이다. 본디 재벌가의 밥상머리 교육은 엄격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재벌가의 자제들을 개인적으로 만나본 사람들은 그들의 정중하고 예의바른 행동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동등한 자격으로 만났을 때의 이야기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아랫사람을 대하는 예의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 결과, 잃을 것이 많을수록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했다.

 

아랫사람을 대하는 예의가 부족한 것이 어디 재벌만의 문제이겠는가. 윗사람에게는 한없이 예의바르지만 아랫사람에게는 가차없이 무례한 사람은 흔히 볼 수 있다. 걸핏하면 시민의식이 문제가 되는 것도 동등 이하의 상대에 대한 예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갑을 위한 예의만 존재하는 나라, 오늘날 동방예의지국의 부끄러운 현실이다.

 

“예의은 오고가는 것이 중요하다. 가기만 하고 오지 않는 것도 예의가 아니고, 오기만 하고 가지 않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예기> ‘곡례’에 나오는 말이다. 예의는 일방통행이 아니다. 위계의 차이를 앞세운 일방적인 예의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위계를 초월하여 모든 인간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예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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