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6년 7월26일, 익재 이제현은 북경을 출발해 사천성 아미산으로 향했다. 원나라 황제의 명을 받아 아미산에 향을 올리러 간 것이다. <역옹패설>에는 그때 여정이 나와 있다. “길은 조나라(하북성), 위나라(산서성), 주나라(하남성), 진나라(섬서성) 땅을 지났다. 기산(岐山)의 남쪽에 다다라 대산관(大散關)을 넘어 포성역을 지나 잔도에 올라 검문(劍門)으로 들어 성도(成都)에 도착했다. 다시 배로 7일을 가서야 아미산에 이르렀다.” 아미산까지 꼬박 한 달이 걸렸다. 연말이 되어서야 북경으로 돌아왔다. 여행 기간은 약 5개월, 여정은 왕복 5000㎞에 달했다. 익재 나이 스물아홉 때의 일이다.

 

3년 뒤의 여행지는 절강성 보타산이었다. 1319년 4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익재는 상왕 충선왕을 모시고 천진~양주~진강~소주~항주에 이르는 대운하길을 밟아 영파의 보타산을 찾았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충선왕을 모시고 성지 순례에 나선 것이다. 다시 4년이 지나서는 충선왕이 유배 가 있던 감숙성의 타사마(朶思麻)를 다녀왔다. 만리장성 서쪽 끝 타사마로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익재는 흙먼지 날리는 사막과 아득한 평원에서 6개월을 보냈다.(지영재, <서정록을 찾아서>)

 

20~30대 젊은 날, 이제현은 북경에 있었다. 주로 만권당에서 충선왕을 보필하고 조맹부·장양호 등 원나라 학자들과 시문을 주고받았다. 문화를 통한 외교활동이었다. 대륙 여행은 중국을 깊고 넓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북경에서 아미산, 보타산, 타사마를 왕래한 거리는 모두 1만3000여㎞. 개성과 북경을 오간 8차례의 사행길까지 포함하면 4만㎞가 넘는다. 훗날 이덕무는 삼국~조선시대를 통틀어 한국인으로 중국 대륙을 두루 밟은 사람은 이제현 말고는 없다고 했다.

 

이제현은 시를 써 여행을 기록했다. 시의 일부가 <익재집>에 전한다. 그는 어떻게 중국 대륙을 무한 여행할 수 있었을까. 고려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다. 고려인의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감각이 없다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려인에게는 대륙과 해양으로 뻗어가려는 기상이 있었다. 그것은 김부식이 동아시아 정세를 탐지하기 위해 두 차례나 송나라를 방문하고, 대각국사 의천이 몰래 상선을 타고 대륙으로 건너가 1년 넘게 유학을 한 데서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조천 또는 연행 사절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중국을 다녀왔다. 그러나 그들은 명·청나라가 지정해 준 사행길을 그대로 밟아야 했다. 사절단이 수백 번을 중국을 다녀와도 모노레일 같은 궤도를 따르다 보니, 보고 듣는 게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대륙을 누비며 국제정서와 문화, 사상을 고민한 의천이나 이제현과 같은 인물은 조선에서 나오기 힘들었다. 언제부터인가 고려는 우리 역사의 사각지대가 됐다. 근대와 맞닿아 있는 조선시대는 가까운 역사라는 이유로, 고대는 민족의 형성기라는 이유로 관심이 많다. 반면 사이에 낀 고려시대는 지나쳐도 좋을 과도기로 인식되곤 한다. 무신 정권, 남녀상열지사, 몽골 침략, 원의 간섭 등의 부정적이거나 왜곡된 역사상도 많아 외면하고 싶은 시대로 치부되기도 했다. 역사소설, 영화, 사극은 소재가 대부분 조선 아니면 삼국시대의 것이다. 당연히 고려사 연구자도 적고,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한 콘텐츠도 부족하다. 그렇다고 고려사가 외면해도 될 시대는 아니다. 고려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완전한 통일왕조다. 단순한 정치 통일이 아니라 옛 고구려나 백제의 문화와 정서까지 아우른 실질적인 민족 통일국가였다. 남북으로 분단된 오늘날, 가장 먼저 들여다봐야 할 역사다.

 

고려가 475년간 지속되는 동안 중국에서는 요, 금, 송나라가 일어나고 망했다. 원의 간섭을 받긴 했지만 고려는 동아시아 판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생명력을 이어갔다. 고려의 국제외교적 성과는 21세기에도 벤치마킹할 대상이다. 고려는 개방성과 다원성의 사회다. 여러 종교·문화가 공존했고 신분 이동도 활발했다. 전성기의 개성은 인구가 50만에 달했다. 한양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도 30만을 넘지 못했다. 무역항 벽란도에는 동아시아와 아라비아 상인들이 몰렸다. ‘코리아’라는 이름도 이때 생겨났다. 고려는 한국사의 중세로 시대구분이 된다. 근래 유럽에서는 ‘중세’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활발하다. 어둠의 시대, 암흑기에서 종교 문화의 융성기, 산업혁명의 배태기로 인식의 전환이 시작되고 있다. 그 결실의 하나가 움베르토 에코가 기획한 <중세> 4부작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중세, 고려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다. <고려사>는 918년 6월 병진일에 고려가 건국됐다고 밝혔다. 병진일은 음력 6월15일, 양력 7월25일이다. 어제는 고려 건국 1100년이 되는 날이었다.

 

<조운찬 논설위원>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