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은 뿔이 났다. 지난 정권에서 사법부 수뇌부가 한 일도 마뜩지 않았다. 민생법안은 그대로 쌓아놓고 파당적 이해관계에만 민감한 국회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나마 촛불시민들의 뜻에 부응하려 애쓰는 곳이 청와대인 줄로 시민들은 믿어왔다. 그런데 그쪽도 아마 기강이 흔들리는 모양이다. 다들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분들인데 도무지 왜 이러는 것일까. 시민들로서는 어이가 없다.

 

도덕 이야기처럼 따분한 것이 없으나,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 영조 때 이름난 선비로 양득중이란 분이 있었다. 산자수명한 월출산 아래 자리한 전라도 영암 출신이었던 그는, 당대의 석학인 윤증의 제자였다.

 

1729년(영조 5) 1월, 양득중은 초야에서 학문을 닦던 중 발탁되어 경연에 참여하게 되었다. 영조와는 초면이나 다름없었다. 이날 경연에서 양득중은 출처(出處)를 정하는 일이 선비에게는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즉 때가 되면 선비는 조정에 나아가 벼슬에 종사하다가도 물러날 시기가 되면 미련 없이 조정을 떠나야 한다고 역설했다(양득중, <덕촌집>, 제3권). 말은 쉬우나 어렵사리 차지한 자리를 스스로 그만두고 떠나기는 실로 어려운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한가지다.

 

옛날의 선비와 오늘날의 지식인은 그 처지가 상당히 다르다. 그러나 그들의 높은 명예와 수행하는 일의 중요성으로 헤아려보면 근본적으로는 유사한 점도 있다. 양득중의 발언에 내가 주목하는 이유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선비의 직분에 대한 평소의 생각을 아뢰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선비는 농민과 구별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선비는 곧 농민에 속합니다. 밭이랑을 오가면서 육체노동을 하는 것이 선비입니다. 그러는 한편으로 틈틈이 경전을 읽고 외우며 수기치인의 도리를 가르치기도 하는 것입니다. 선비가 몸을 닦고(行身) 지키는 도리는 오직 출처(出處)의 두 길뿐입니다. 경전에 적혀 있듯이, ‘가난하면 자신의 몸을 홀로 착하게 하다가 높은 지위에 오르면 온 세상을 모두 착하게 만드는 것(窮則獨善其身 達則兼善天下)’입니다. 이것이 선비의 도리입니다.”

 

그는 <맹자>의 ‘진심장(盡心章)’을 인용했다. 그가 한 말을 몽땅 현대식으로 풀이하면 무슨 말이 될까. 다음과 같지 않을까.

 

‘고위공직자도 시민과 딱히 구별되는 존재가 결코 아닙니다. 고위공직자도 시민입니다. 시민은 각종 노동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합니다. 그러면서 틈틈이 책을 읽고 교양을 쌓아 시민이 지켜야 하는 도덕과 법규를 익힙니다. 공직자도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알아야 합니다. 평범한 시민으로 살 때는 법과 규칙을 준수하며 조심스레 살지만, 귀한 직책을 얻으면 나라 전체가 민주적인 원칙과 도덕에 어긋나지 않도록 백방으로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시민이 공직에 나아갈 때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양득중의 발언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내가 이것을 현대식으로 바꿔본다.

 

‘오늘날 고위공직자는 자신이 책임져야 할 제 몸도 있고, 가정도 있다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또 자신이 함양해야 하는 교양과 엄중한 공적 책무가 존재하는 줄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할 일에 힘씁니다. 제가 일개 시민으로 지낼 적에는 생업에 충실했습니다. 물론 가끔은 무슨 연유론가 남의 집이며 직장을 방문할 기회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주고받는 이야기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주로 학연, 지연 및 혈연에 관계되는 사소한 이해관계를 따지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도 아니면 당파적 이해득실에 따라 경쟁자들을 마구 헐뜯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윤리와 도덕을 지키려고 힘써 노력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교양과 전문지식을 높이려고 애쓰는 이도 보지 못한 지가 오래입니다. 평소 제가 목격한 이런 풍경들은 제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양득중이 경연에서 소리 높여 외친 말들이 왜, 200년 전의 옛일로만 생각되지 않을까?

그가 활동하던 18세기는 세상이 당쟁의 회오리에 휘말려 몹시 어지러웠다. 대개의 선비들은 이미 벼슬길에서 멀어져 있었다. 그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농업에 종사했다. 몸소 밭 갈고 씨 뿌리며 농업에 종사했다는 말이다. 선비는 교양과 지식을 갖춘 현대사회의 노동자와도 비슷했다. 선비들은 틈틈이 경전 공부에도 힘을 쏟았으나, 관직에 진출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비들은 당파싸움(黨論)에 매달렸다. 틈만 나면 무리를 이루어 상소를 올렸고, 사사건건 반대 당파를 공격하느라 시간과 정력을 낭비했다. 양득중은 당대의 과열된 정치풍토에 현기증을 느꼈다. 현대사회에서도 특정 정치세력을 무턱대고 비호하거나 헐뜯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더욱 혼탁해지기도 한다.

 

양득중의 생각은 분명했다. 요즘의 말로, 시민은 어떤 지위에 있든지 자신의 처지에 합당한 도리를 지켜야 한다고 보았다.

 

그동안 세상이 많이 변했지만, 과연 도덕과 규율이라고 하는 것이 아예 없을 수가 있는가.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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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