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황제에게 비보(秘報)를 보고할 때는 묵서 대신 화학비사법을 써서 기밀을 유지하라.”(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발굴한 <제국익문사비보장정>의 내용이다. 이 책은 1902년 고종 황제가 지금의 국정원 격인 비밀정보기관인 제국익문사를 설립하면서 만든 총 23개조의 황제어람용 비밀 규정집이다. 제국익문사 요원들은 정부 고관대작과 군영 장관의 동향을 파악했다. 특히 ‘일본의 정당과 낭객, 수비대와 헌병대’는 요시찰 대상이었다. 친일파와 일제를 타깃으로 삼았다는 얘기다. 61명의 요원 중에는 9명의 해외통신원까지 포함돼 있었다.

 

 

비밀조직이었으므로 이들이 실제 활동했다는 증거는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일본인 나라사키(楢崎桂園)의 책 <한국정미정변사>에 수상쩍은 대목이 있다. “고종은 내각의 친일 대신들을 의심하여 3~4인의 밀정을 붙여 모든 기밀을 탐지하게 했다”는 것이다. 나라사키가 말한 밀정이 제국익문사 요원이 아니었을까. 이태진 교수는 몇몇 인물들의 이름을 거론한다. 하얼빈 의거(1909년 10월) 후 블라디보스토크에 밀파된 송선춘과 조병한은 어떨까.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일본 총영사인 오토리 후지타로(大鳥 富士太郞)는 “두 사람은 태황제(고종)의 비밀어새가 찍힌 친서를 (정체를 의심한 한인사회에) 보여주었다”고 했다. 특히 송선춘은 ‘송 주사(主事)’로 일컬어진 한국 관리 출신이었다. 오토리는 또 “하얼빈의 흉변(거사)도 고종이 선동한 것”이라 했다. 안중근의 하얼빈 거사를 고종과 연계한 것이다. 두 사람은 감옥에 갇힌 안중근 의사의 재판을 도우려고 파견된 제국익문사 요원일 수도 있다.

 

독립운동가 정재관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190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어난 장인환·전명운 의사의 스티븐스 암살 의거를 촉발시킨 인물이다. 정재관은 하얼빈 의거 2개월 전 서울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왔다. 그런데 1909년 12월7일 일본 관동도독부 육군참모장인 호시노 긴코(星野金吾)가 충격적인 보고서를 낸다. 하얼빈 의거의 주동자를 ‘한국의 시종무관을 지낸 정재관’이라 못박은 것이다. ‘시종무관’이라면 황제의 호위무사가 아닌가. 게다가 정재관이 하와이로 떠난 것이 제국익문사가 출범했다는 1902년이다. 정재관은 고종이 파견한 제국익문사의 해외비밀통신원이 아니었을까. 고종-제국익문사-정재관-안중근…. 볼수록 흥미진진한 연결고리다.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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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