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管仲)은 유가(儒家)에서 논쟁적 인물이었다. 사마천은 관중을 <사기열전>의 두 번째 편에서 소개했다. 제나라 왕위다툼에서 관중이 추종했던 규(糾)가 패했다. 함께 규를 추종했던 소홀은 죽었지만 관중은 목숨을 부지했다. 오히려 승자인 제환공에게 포숙아가 그를 천거했다. 관중이 말했다.

“포숙아는 나를 염치없는 사람이라 여기지 않았다. 내가 작은 절개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천하에 공명(功名)을 드러내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 준 사람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다.”

서적 <사기열전> (출처 : 경향DB)


재상이 된 관중은 보잘것없었던 제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 “곳간이 가득해야 예절을 알고, 의식(衣食)이 족해야 영욕(榮辱)을 안다. 위에 있는 사람이 절도가 있으면 육친(六親)이 뭉치고, 예·의·염·치가 베풀어지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

법령이 흐르는 물처럼 민심을 좇았다. 논의가 실생활에 가깝고 행하기가 쉬웠다. 범속한 사람이 바라는 대로 허여해주고, 꺼리는 것은 제거해주었다. 관중의 정사는 화(禍)가 될 것을 복(福)이 되게 했고, 실패를 성공으로 바꿨으며, 일의 경중(輕重)을 잘 헤아리고 저울질에 신중했다. 밖으로는 주변국 제후들에게 신뢰를 주어 제나라를 따르게 했다. 그는 말했다. “주는 것이 갖는 것임을 아는 것이 정치의 도(道)다.”

공자(孔子)는 <논어> ‘팔일’ 편에서 관중을 평가하기를, 그릇이 작았다, 검소하지 않았다, 또한 예를 몰랐다고 했다. 그런데 ‘헌문’ 편에서는 제자들이 관중의 처신을 들어 어진 사람이 아니었다고 문제를 제기하자, 그의 공업(功業)을 들어 인(仁)하다고 평가했다. “제환공이 제후들을 규합하는 데 무력을 쓰지 않은 것은 관중의 힘이었다.” “천하를 크게 바로잡아 백성들은 지금까지 그 혜택을 받고 있다.”

공자는 큰 것은 크게, 작은 것은 작게 보아 관중을 높게 평가했다. 그런데 후대의 유자(儒者)들은 맹자의 왕도정치론에 따라 관중을 낮게 평가했다. 당초 위정자에게 도덕성을 요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제 한 몸 착한 것을 바라는 것이겠는가.

오늘날 우리는 어떤가. 은연중에 도덕성과 능력을 택일적인 것처럼 생각하고, 다소 부패한 사람이 더 유능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생각도 있는 듯하다.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에겐 과도하게 도덕성을 요구하는가 하면, 자신에게 이로울 것이 기대되는 사람에겐 공직자라면 갖춰야 할 최소한의 도덕성도 포기한다. 이제 부패와 무능이 쌍으로 난무하는 현실이라니.


김태희 | 다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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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