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의 역사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은 14세기 초 한 이탈리아 수도원에서 일어난 끔찍한 연쇄 살인사건을 다룬다. 살인사건의 배경이 된 것은 다름 아닌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었다. 호르헤라는 수도원의 원로 수도사는 젊은 수도사들이 <시학>을 읽지 못하도록 책에 독을 발라놓았고 새로운 것에 목말라 있던 젊은 수도사들이 지적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책장을 넘기다 독에 중독되어 죽어갔다. 왜 책을 읽지 못하게 했을까?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터무니없겠지만 호르헤는 수도사는 웃어서는 안되고, 웃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웃음은 악마라면서 웃음을 죄악으로 간주했다. 그에게 웃음이 죄악인 이유는 인간이 웃음을 알게 되면 두려움을 잊어버리고 두려움을 잃게 되면 더 이상 신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설의 이야기는 문학적 상상물이지만 늙은 수도사의 모습은 종교적 편견과 아집을 잘 보여준다.

 

실제 중세 유럽 사회의 모습은 이에 못지않았다. 에코의 소설에서처럼 실제로 중세 서유럽 교회는 오랫동안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학문을 멀리했다. 그러다가 중세 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고전 학문과 문화를 배우자는 르네상스라 불리는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러한 시대 분위기 속에서 ‘책 사냥꾼’들은 고대의 필사본 책을 찾기 위해 유럽 전역의 수도원을 돌아다녔다. 르네상스 시기 피렌체의 정치를 주도했던 메디치 가문도 이들 책 사냥꾼에게 고대의 필사본을 찾도록 재정적으로 후원했다. 1417년 이탈리아 출신의 인문주의자이며 교황청 서기였던 포조 브라촐리니는 남부 독일의 한 수도원에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라는 고대 필사본을 발견했다. 이 책은 기원전 1세기 로마 출신의 시인 루크레티우스의 작품이다. 루크레티우스는 이 책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떨쳐버리고 내세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자고 역설했다. 이러한 목표는 사물의 본성, 즉 자연의 이치를 알게 되면 달성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사실 이 책은 1400년 이상 묻혀 있었다. 이 책이 오랫동안 외면당한 이유는 책 속의 불온한 생각 때문이었다. 루크레티우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사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입자들로 만들어진다.” “물질을 구성하는 기초 입자인 사물의 씨앗들은 영원하다.” “우주에는 창조자도 설계자도 없다.” “사물은 일탈(swerve)의 결과로 태어난다.”

 

“일탈은 자유의지의 원천이다.” “자연은 실험을 멈추지 않는다.” “우주는 인간을 위해서 혹은 인간을 중심으로 해서 창조된 것은 아니다.” “인간은 특별하지 않다.” “사후세계는 없다.”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모든 체계화된 종교는 미신적 망상이다.” “천사니, 악마니, 귀신이니 하는 것들은 없다.” “인생 최고 목표는 쾌락의 증진과 고통의 경감이다.” 어떻게 2000년 전에 이런 혁신적 생각을 했을까 감탄스럽기도 하지만 그의 사상은 중세 교회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위험한 발상이었다.

 

그 때문이었는지 그의 책은 교회와 성직자들의 반발을 일으켰다. 15세기 말 피렌체의 도미니쿠스 수도회 수사 지롤라모 사보나놀라는 피렌체 군중 앞에서 이 세계가 공기 중을 떠다니는 아주 작은 입자인 원자로 만들어졌다는 원자론은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조롱했다. 결국 교회와 성직자들은 루크레티우스의 시가 음탕하고 사악하며 영혼이 사멸한다는 궤변으로 가득한 작품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그의 작품을 읽는 것을  금했다. 1549년에는 교황청 금서목록에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터져 나왔다.

 

교회가 루크레티우스의 시를 음탕하고 사악하다고 비난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에피쿠로스 추종자였기 때문이다. 루크레티우스는 인간의 삶이 무거운 종교에 눌려 땅에 비천하게 누워 있을 때 처음으로 눈을 들어 이에 맞선 최초의 인간이라고 에피쿠로스를 찬양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에피쿠로스는 쾌락주의자 정도로만 알려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일 뿐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에피쿠로스의 쾌락은 방탕하고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는 중세 유럽에서 잘못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에피쿠로스에게 인생 최고의 선은 쾌락이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오해와 달리 에피쿠로스에게 진정한 쾌락은 신중하고 공정하고 정의롭게 살지 않고서는, 용감하고 온화하고 관대하게 살지 않고서는, 벗을 사귀고 인류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중세 교회는 다른 생각을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몇 백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도 어떤 면에서는 중세 유럽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20세기 역사학의 고전이 된 영국 역사가 E H 카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지 못하게 했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양희은의 노래 ‘아침이슬’을 못 부르게 했으며 긴 머리와 짧은 치마를 규제했던 시절이 먼 과거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생각을 허용하지 않고, 책과 노래를 금지하고, 종교와 사상을 강요하려는 퇴행적 사고나 시도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인류가 오랜 역사를 통해 얻어낸 보편적 가치들을 존중하는 신사협정이 필요해 보인다. 그중 하나가 다른 생각을 가질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남종국 이화여대 사학과>

'역사와 현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병자사지(兵者死地)  (0) 2018.07.19
중국은 어디로 가는가  (0) 2018.07.12
다른 생각을 가질 권리  (0) 2018.07.05
책 읽는 일본을 보는 한국인의 시선  (0) 2018.06.28
다섯 군대의 전투  (0) 2018.06.21
정치와 진정성  (0) 2018.06.14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