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 속편 이야기가 아니라 이번 지방선거 이야기다. <한서(漢書)>에 따르면 군대는 다섯 가지가 있다. 의로운 군대 의병(義兵), 침략에 대응하는 응병(應兵), 분노를 참지 못하는 분병(忿兵), 탐욕에 눈먼 탐병(貪兵), 교만에 빠진 교병(驕兵)이다.

 

이 다섯 군대는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진단하기에 적절한 비유로 보인다. 굳이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를 끌어올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향후 정치권의 전망과 과제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첫째, 의병은 대의명분이 있는 군대다. 치열한 전장에서 대의명분 따위 아무 소용없는 것 같지만, 전쟁에는 반드시 명분이 필요하다. 이번 선거의 의병은 우리 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주의 타파를 명분으로 내세운 후보들이다. 이들의 대의명분에 공감한 유권자들은 기꺼이 표를 던져 힘을 보탰다. 보수의 텃밭에서 거둔 의병의 승리는 그래서 소중하다. 비록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선전한 의병들도 박수 받아 마땅하다. 명분만 있으면 져도 진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역할이다. “의병은 왕좌를 차지한다(兵義者王).” 지역정당에 안주하겠다면 모르겠지만 정권을 잡으려면 지역주의 극복은 필수다.

 

둘째, 응병은 침략한 적을 막기 위해 부득이 일어난 군대다. 현직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출마한 후보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응병은 유리하다(兵應者勝).” 원래 수비는 쉽고 공격은 어려운 법, 모든 선거는 굳건한 조직과 높은 인지도를 갖춘 현직 후보에게 유리하다. 이 점은 정당 공천이 없는 교육감 선거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출마한 현직 교육감 12명이 전원 당선에 성공했다. 진보적 교육정책에 대한 지지로 해석하기는 망설여진다. 아무래도 수비의 이점을 잘 살린 결과로 보인다. 교육감 선거만 그런 게 아니다. 현행 선거 제도가 현직의 기득권을 보장하고 신인의 등장을 가로막는다는 비판이 제기된 지 오래다. 누가 누군지 모르는 ‘깜깜이 선거’도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

 

셋째, 분병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싸우는 군대다. 공천 결과에 불복하여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분병은 불리하다(兵忿者敗).” 불공정한 공천에 분노를 토로하며 비장한 각오로 출마를 결심하지만 정당의 지원 없는 무소속 출마는 가시밭길이다. 무소속 후보의 당선은 늘 이변이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공천 갈등은 정치의 후진성을 입증한다. 충격적인 선거 결과에 가려졌지만 이번에도 여야를 막론하고 공천을 둘러싼 잡음은 여전했다. 전략공천이라는 미명하에 당 지도부가 자기 사람을 심는 행태도 그대로였다. 불투명한 공천 과정도 문제지만, 탈당했다가도 당선만 되면 슬그머니 복당하는 관행도 문제다. 아예 떳떳하게 복당을 공약으로 내걸고 출마한 후보도 있었다.

 

공천 갈등은 정당을 분열시키고 국민의 정치 혐오를 부추긴다. 선거가 끝났다고 또 유야무야 넘어가면 곤란하다. 공정하고 투명한 공천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넷째, 탐병은 토지와 재물을 탐내어 싸우는 군대다. 원래 지방선거의 본질은 지역 주민의 삶을 책임질 일꾼을 뽑는 것이다. 집권 정당 심판이나 권력 구도 개편 따위는 부차적인 문제다. 민생에 밀착한 정책으로 밑바닥 민심을 다져온 군소 진보정당이 그래도 선전한 이유다. 반면 지방선거를 앞두고 급조된 정당은 한 자리도 건지지 못했다. 지방선거의 본질을 외면하고 총선과 대선의 발판으로 간주한 탓이다. “탐병은 깨어진다(兵貪者破).” 제 욕심이 앞서는 정당의 분열은 예견된 수순이다. 과욕을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미래는 불투명하다.

 

마지막으로 교병은 넓은 영토와 많은 인구를 믿고 위세를 과시하는 교만한 군대다. 이번 선거에서 사상 최악의 참패를 맞은 보수 정당에 걸맞은 비유다. 보수 정당의 참패는 철 지난 색깔론, 대책 없는 국정 발목잡기, 무엇보다 그간의 실정에 대한 반성 없는 태도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심판이다. 참패의 조짐은 여론조사를 통해 일찍부터 드러났다. 그러나 보수 정당은 그조차 믿지 않을 정도로 교만했다.

 

‘샤이 보수’의 반란을 꿈꾼 보수 정당은 철석같이 믿었던 영남과 강남의 보수층 유권자들에게조차 외면받았다. “교병은 멸망한다(兵驕者滅).” 이제 보수 정당은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당명을 바꾸는 정도로는 회생하기 어려워 보인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는 주문을 절실히 받아들여야 한다.

 

전쟁에 반드시 이기는 방법은 없다. 똑같이 배수진을 쳐도 누구는 이기고 누구는 진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드시 이기는 방법은 없어도 반드시 지는 방법은 있다. 그것이 바로 교만이다. ‘교병필패(驕兵必敗)’, 교만한 군대는 반드시 패배한다.

 

패배한 정당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번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여당이 가장 조심해야 할 것도 교만이다. 여당은 승리에 도취해 있을 여유가 없다. 모든 경제지표가 부진한 상황에서 국민의 지지가 언제까지고 변함없으리라는 생각 또한 교만이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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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