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아프리카를 순방하고 있다. 5월28일 우간다 캄팔라에서 박 대통령을 반긴 이는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이다. 그는 32년 동안 우간다를 통치하고 있다.

무세베니는 경향신문 1985년 7월27일자 외신면에 처음 등장했다. ‘전 국방장관 요웨리 무세베니가 이끄는 우간다 반군들이 수도 캄팔라에서 240㎞ 떨어진 카세세 지역의 포트 포르탈시를 점령한 후 이곳을 사실상 봉쇄함으로써 우간다 사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캄팔라 주재 외교관들의 말을 인용해 국영 라디오가 보도했다.’

무세베니는 1944년 우간다 남서부 은툰가모에서 소몰이꾼의 아들로 태어났다. 탄자니아로 유학가서 다르 에스 살람 대학교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공부했다. 1971년 쿠데타로 이디 아민이 집권하자 무세베니는 밀턴 오보테 세력과 함께 탄자니아로 망명해 우간다민족해방전선에서 활동했다. 1979년 아민을 몰아낸 그는 국방부 장관에 임명됐다.

하지만 1980년 12월 선거에서 오보테가 다시 대통령이 되자 무세베니는 그와 갈라서고 국민저항군을 조직해 무장 반정부 투쟁을 시작했다. 그는 정부 은행을 털어 주민에게 옷과 식량을 배급하는 등 공을 들여 정부군 만행에 시달려온 주민들로부터 ‘로빈후드’라는 별명을 얻었다. 무세베니는 1985년 오보테를 쿠데타로 축출했던 로아라 오켈로를 몰아내고 1986년 1월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우간다는 비동맹, 반식민주의를 표방하며 사회주의 국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무세베니 대통령은 1987, 1990, 1992년 등 북한을 3차례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났다. 경향신문은 1990년 5월29일 1면에 ‘무세베니 대통령이 평양에 도착, 이종옥 부주석 등의 영접을 받았다’고 썼다.




무세베니는 1996년 선거에서 당선돼 우간다 최초의 직선 대통령이 됐고(경향신문 1996년 5월12일자 6면) 2001, 2006, 2011년 선거에서도 당선됐다. 그는 집권 초기 반부패, 사법개혁 등을 추진하면서 ‘아프리카의 비스마르크’라고도 불렸다. 하지만 집권 기간이 길어지면서 그만큼 부정과 부패도 늘어가고 있다. 2005년 헌법 개정으로 3선 제한 조항을 삭제하면서 ‘종신 대통령’의 길을 텄다. 적대세력, 특히 아촐리족에 보복 행위를 일삼았다. 언론 탄압, 동성애자, 여성 등 소수자나 약자 인권 침해 등도 늘고 있다.

지난 2월 대선에 대해 ‘유럽연합 선거감시위원회’는 “민주적 절차를 충족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5월12일 그의 취임식 때는 국제형사재판소가 지명수배한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 참석에 항의해 미국, 유럽, 캐나다 정부 특사들이 집단 퇴장했다.

무세베니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을 가졌고 새마을운동에 관심을 기울였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 방한한 외국 정상이 그였다. 2013년 정상회담에서 무세베니 대통령은 “선친의 업적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이번 우간다 방문에서 박 대통령은 그와 새마을운동 확산을 논의했고, 청와대는 “수출, 프로젝트 수주 등 9건, 315만달러의 실질 성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38억원 정도다.



최우규 정치·국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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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