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최근 교육부가 2023년까지 세계적인 인문학 고전 1000권을 선정해 번역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이러한 교육부의 결정은 환영할 일이다. 무엇보다도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보면 번역은 지식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이슬람 문명은 800년부터 1300년까지 세계 제일의 과학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명성의 근간에는 활발한 번역 활동이 있었다. 7세기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성장한 이슬람 문명은 초기에 페르시아와 인도의 과학서적을 아랍어로 번역했다. 832년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였던 알아문은 제국의 수도 바그다드에 아랍어로 바이트 알히크마, 즉 ‘지혜의 집’이라 불리는 도서관을 설립해 번역과 학문 연구를 진흥시켰다. 칼리프의 재정 지원을 받은 학자들은 인도와 페르시아 서적 이외에도 그리스의 과학·철학 서적들을 아랍어로 번역했다. 고대 로마제국 시절의 위대한 지리학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 집대성>이 9세기 초 <알마게스트(Almagest·위대한 책)>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었다. 반면 중세 유럽에서는 15세기에 가서야 프톨레마이오스의 저서들이 번역되기에 이르렀다. 그만큼 중세 이슬람 세계가 유럽 기독교 세계보다 지중해의 고전문명을 수용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앞서 있었다.

 

고대 기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본>, 고대 그리스 최고의 수학자 중 한 명이었던 아르키메데스의 여러 저술들, 플라톤과 함께 그리스 최고의 철학자로 평가받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여러 저술들이 아랍어로 번역되었다. 이러한 번역은 활발한 학문 연구로 이어졌다. 12세기 이베리아 반도 출신의 이슬람 학자인 이븐 루시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그의 설명은 중세 서유럽이 과학, 자연, 형이상학을 이해하는 데 크게 기여해 유럽 사람들이 그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석자’라는 명예로운 명칭으로 불렀다.

 

아랍어로 번역된 문헌들은 천문학, 산수, 기하학, 철학, 논리학, 형이상학 등에 그치지 않고 점성학과 연금술, 음악이론, 물리학, 동물학, 식물학, 의학, 약리학, 군사학 등의 모든 학문 분야를 망라했다. 특히 의학서적의 번역이 활발했다. 한때 ‘지혜의 집’의 책임자였던 후나인 이븐 이스하크(808~873)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세계를 대표하는 의사였던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의 저작 150편을 번역했을 정도였다. 아랍어로 번역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의학은 이슬람 세계에서 한층 풍성해졌다. 11세기 이븐 시나는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의 의학을 더욱 발전시켜 아랍어로 &lt;의학정전&gt;을 저술했다. 이 의학서는 1600년대까지 유럽의 대학에서 의학 교재로 사용될 정도로 기독교 세계에서도 큰 명성을 누렸다.

 

서유럽 기독교 세계가 번역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아랍어로 된 저작들을 라틴어로 번역하기 시작한 것은 11세기 말이었다. 물론 성직자들은 이교인 이슬람 서적들을 기독교 세계에 번역·소개하는 것에 반대했다. 특히 기독교 교리에 어긋나는 내용일 경우 그 반대는 더욱 거셌다. 그러나 교회도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막지는 못했다. 유럽 최초의 의학대학인 이탈리아 살레르노 의학대학은 처음부터 아랍어 의서들을 광범위하게 번역해서 수업에 활용했다. 12세기 영국 출신 자연철학자 애덜라드는 선진적인 아랍 학문이 서유럽 기독교 세계를 변화·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많은 아랍어 서적들을 라틴어로 번역했다. 이렇게 이슬람 세계로부터 지적인 영향을 받은 덕분에 서유럽 기독교 세계는 12세기 르네상스라 불리는 문예부흥을 이룰 수 있었다. 번역이 중세 이슬람 세계의 과학과 학문을 발전시킨 것처럼, 서유럽 세계 또한 아랍어 서적들을 라틴어로 번역함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본이 아시아 국가 중에서 일찍 근대화를 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도 번역을 통한 서양 과학과 학문의 수용이었을 것이다. 서양 과학서적이 일본어로 완역된 최초의 사례는 18세기 후반에 번역된 의학서 <해체신서>였다. 이 책을 발간한 이후 의학 이외에도 과학, 천문학, 수학 등 유럽 학문에 대한 관심이 증대했다. 번역은 외국인 교사 채용, 유학생·시찰단 파견과 함께 일본 근대화의 첫걸음이었다. 메이지 정부 초기에는 번역의 시대라 불릴 정도로 번역이 활발했다. 오늘날에도 일본에서 번역은 활발하며 중요한 학문적 업적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번역에 있어 지금 한국의 현실은 암담하다. 한마디로 번역을 권장하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학의 학문평가 방식과 시장이 구조적으로 번역을 활성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억제하고 있다. 대학을 평가하는 신문사들과 그들이 만든 평가 지침을 따를 수밖에 없는 대학들은 번역을 중요한 연구 업적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시간과 노력은 많이 들고 학문적 평가와 금전적 보상은 미미한 상황에서 활발한 번역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지금이라도 이런 시스템을 바꿔야 할 것이다. 너무 늦긴 했지만 이제라도 번역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이를 장기적인 안목으로 지원하겠다는 교육부의 결정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남종국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역사와 현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0) 2018.09.13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0) 2018.09.06
번역의 힘  (0) 2018.08.30
아버지의 위기인가  (0) 2018.08.23
표창원 의원님께  (0) 2018.08.16
조선왕조실록 ‘졸기(卒記)’  (0) 2018.08.09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