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조선이 왕조국가이면서 동시에 유학을 정치이념으로 삼았다는 것을 별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 두 가지가 그 속성상 저절로 공존했던 것은 아니다. 정치이념으로서의 유학은 민본(民本)을 최고의 가치로 삼기 때문이다. 종신의 최고권력자, 다음 왕까지 자기 뜻대로 지명할 수 있는 살아있는 최고 권력이 왜 민본이라는 공공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인가. 현실에서 절대 권력을 가진 사람 앞에서 어떤 논리로 정치를 부지런히(勤政), 생각해가면서(思政) 하라고 설득하고 요구할 수 있을까. 근정전과 사정전은 경복궁의 가장 중요한 두 건물인 정전과 편전의 이름이다.

 

현재의 한국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두 원리로 운영된다. 이 역시 우리가 별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지만, 두 ‘주의’의 거리는 왕조국가와 유학의 거리보다 훨씬 더 멀다. 민주주의는 사람 하나하나에게 주어졌다고 믿어지는 천부(天賦)의 인권과 보통선거권 위에 있다. 자본주의 그 자체는 그것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 오히려 정책적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자본은 장기적 내재적으로 사회적 빈부 확대와 양극화를 속성으로 한다. 자본의 역사가 이를 잘 보여준다. 제러미 리프킨이 <노동의 종말>(1995)에서 현대 자본주의의 그런 특성을 잘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사회적인 번영을 위해서는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 시대가 확보하고 있는 경험적인 사실이다.

 

문제가 자리하는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현실에서 사적인 것은 차고 넘치는데, 공적인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런 심한 불균형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까. 사실 이것이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소식이 자주 들려온다.

 

사기업 운영 주체가 가장 먼저 힘쓰는 일 중 하나는 인건비(고용)를 줄이는 것이다. 큰 기업이든 작은 편의점이든 마찬가지이리라. 또 우리나라는 비교적 소득이 높은 나라들 중에서 대학교육이 국립이 아닌 사립에 맡겨져 있는 거의 유일한 나라라고도 한다. 그것을 그리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무엇이 공적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아직 여기에 미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는 가까이에 얼마든지 있다.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라면 대개 아이가 장차 수입이 높고 안정되며 사회적으로도 힘이 있는 의사나 판검사가 되기를 원하리라.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가난한 이들에게 인술을 펼치는 의사나 정의로운 판검사를 원한다. 두 가지 소망이 이율배반이라고까지 하기는 어려워도 조화를 이룬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누가 잘못했다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사회적 공공성의 근거와 논리를 어디서 확보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정부가 있어서 세금을 운용하고, 행정력을 가진다. 법원과 입법부도 그에 포함된다. 하지만 세금이나 공권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따져보면 제한적이다. 더구나 한국은 이제 사람들이 공적으로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을 정부가 함부로 할 수도 없는 사회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은 사익만 추구하는 개인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말이다. 하지만 이미 경제학에서도 그 명제가 사실이 아님은 오래전에 증명되었다. 이것은 사회를 정상적으로 유지하려면 눈에 보이는 공적인 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공공성에 대한 추구는 지금이 전통시대보다 훨씬 어렵다.

 

많은 전통사회에서는 정치권력이 사회적, 경제적 세력보다 강력했다. 그랬기 때문에 정치적 최고 권력자의 생각과 결심에 따라 사회를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았다.

 

조선의 지식인과 관료들은 우연적일 수밖에 없는 왕 개인의 성향이나 자질에만 의존하는 정치를 극력하게 경계했다. 그들은 일정한 수준 이상의 왕을 만들어내려고 최선을 다했고, 그것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모든 국왕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하루 중에 가장 많이 하는 것은, 놀랍게도 ‘경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일종의 세미나였다. 하지만, 오늘날 정치와 사회·경제적 관계는 전통시대와 정반대이다. 정의로운 정부가 있다 한들, 정부 홀로 사회 정의를 지켜낼 수는 없는 시대가 되었다.

 

퇴임한 박보영 대법관이 퇴임 대법관으로서는 처음으로 다시 법관에 임용되어 여수시 법원으로 간다고 한다. 김영란 대법관, 김신 대법관이 퇴임 후에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여러 해 전의 소식이 기억난다.

 

맹자가 한 말 중에 많이 인용되는 말이 있다. “일정한 생업이 없는데도 일정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선비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백성들은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 일정한 마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두 대법관은 연금을 받게 될 것이니 항산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들은 소박한 삶과 명예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어쩌면 그들의 행동에 공공성의 단서가 있을지 모르겠다.

 

<이정철 한국국학진흥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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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