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대해서는 잘못 알려진 것들이 적지 않은데, 불교 탄압도 그중 하나이다. 조선 정부가 처음부터 불교를 억압하고 탄압했다는 말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건국 초기 조선에 한정한다면 적어도 종교적 신앙적 차원에서 새 왕조정부가 불교를 탄압하지는 않았다. 원칙주의자였던 세종대왕은 경복궁 안에 불당을 조성하기까지 했다. 조선 정부가 불교에 대해서 공격했던 것은 사찰들이 지배했던 엄청난 규모의 인력과 토지였다.

 

불교는 고려의 국가 종교였다. 이 때문에 고려시대에 사회적으로 가장 중요했던 기관은 불교 사찰이다. 왕조정부가 존중하는 기관이었기에 사찰 자산에 대해서는 많은 면세 혜택이 주어졌다. 바로 이점을 이용해서 조세 회피가 일어났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A가 1만평의 땅을 가지고 있고, 여기에 대해서 매년 30가마의 쌀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고 치자. 그런데 A가 그 땅을 사찰에 기부하면, 사찰 소유가 된 그 땅에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이를 이용해서 사전에 A는 사찰 주지와 비밀계약을 맺는다. 1만평을 기부하는 대신에 매년 15가마만을 사찰에 시주하는 내용이다. 사찰도 이익이고, A도 이익이다. 정부만 세금 수익을 잃게 된다.  

     

만약 이런 일이 많은 사찰에서 일어나면 어찌 될지는 명약관화하다. 국가를 운영할 수 없게 된다. 고려왕조가 무너진 원인이 여러 가지지만 불교 사찰과 지주의 이런 결탁이 중요한 원인의 하나였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건국 초 조선 정부가 바로잡았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결코 정부 차원에서 그 신앙의 원리를 문제 삼아서 불교를 공격했던 것은 아니다.

 

비슷한 일이 조선 후기에도 일어났다. 조선은 유학을 건국이념으로 성립되었다. 이 때문에 적어도 16세기 후반 이후 서원은 조선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 기관이었다. 경북 영주에 있는 소수서원이 조선 최초로 1543년에 건립되었다. 서원이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사림세력이 권력을 잡은 선조 때(1567~1608)부터였지만, 당시만 해도 서원은 사회적으로 긍정적 측면이 더 많은 기관이었다.     

 

하지만 소수서원 건립 후 약 100여 년이 지난 현종, 숙종 무렵부터 그 폐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아졌다. 서원 자체도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서원에서 기리는 인물은 뛰어난 유학자여야 한다는 원칙이 본래 있었다. 하지만 이 시기가 되면 자기 문중의 인물을 기리기 위해서 서원을 세우는 경우까지 나타났다.    

   

결국 1714년(숙종 40년)부터 서원 설립을 금지했고, 1727년(영조 3년)에는 서원에 대한 철거 조치가 처음으로 취해졌다. 흔히 1864년(고종 1년)에 대원군이 내린 ‘서원철폐령’만 알려졌지만 이보다 훨씬 전에 서원에 대한 법적 조치가 취해졌던 것이다. 흥미롭게도 당시 조선 조정이 이런 조치를 내린 원인은 건국 초 태종이 사찰을 정리했던 이유와 별로 다르지 않다. 사찰과 서원은 그것이 주장하는 가치와 논리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기능과 역기능에서 비슷한 면이 많았다.

 

불교를 국시로 했던 고려에 사찰이 중요했고, 유학을 국시로 했던 조선에 서원이 중요했다면 지금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기관은 기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이야말로 자본주의의 핵심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찰이나 서원은 그 운영을 위해서 경제적 자원이 필요하기는 해도 그것의 축적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것이 지향하는 가치를 존중하는 기간이 길어지며 그 사회적 기능에 대한 비판이 무디어지자 결국 심각한 폐단을 낳았다. 그에 비해서 기업은 수익을 내는 것이 핵심적인 존재 이유이다. 사찰과 서원보다 기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더 엄격해야 할 이유가 이것이다. 기업을 위해 사회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 기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 삼성 계열사 임원들이 출석해서 질문에 답변한 것에 대한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그들은 법정에서 받은 수십 개 질문에 대해서 “거부합니다”라는 답변만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특별검사팀의 한 검사가 “그들의 증언 거부는 무책임하고 부적절한 처사”라고 말했단다. 그 말의 취지를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옳은 판단은 아니다. 그들은 책임 있고 적절한 답변을 했다. 그 정도 사리분별을 못했다면 그들이 그 자리까지 갈 수 있었겠는가. 다만, 무엇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무엇을 기준으로 적절한 것인가 하는 점이 다를 뿐이다.

 

아마도 특검의 상대는 이재용씨 변호인들만도 아닐 것이다. 기업은 이미 우리 사회에 가장 강력한 여론 형성 메커니즘을 주도하는 기관 중 하나이다. 광고를 실어야 하는 언론사 간부, 일정한 여론 영향력을 가진 학계 인사와 단체들이 이 사건에 대해 완전히 공적 입장에 있다고 잘 믿어지지 않는다.

 

조선이 서원을 정리했다고 해서 유학을 부정했거나 그 근본 가치를 의심했던 것은 전혀 아니다. 서원은 서원답고, 기업은 기업다우면 될 것이다. 예수님 말대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로 가야 한다.

 

<이정철 한국국학진흥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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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