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는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연암 박지원은 중국 기행에서 천하의 대세를 살폈다. <열하일기>의 한 편인 ‘심세편(審勢編)’의 이름에서 알 수 있다. 중원을 차지한 청조가 어떻게 중국을 지배하는가. “중국의 동남지방은 개명(開明)한 곳이어서 반드시 천하에 앞서 일이 생긴다. 그래서 강희제는 여섯 차례나 이 지방을 순행했다. 지금의 황제(건륭제)도 다섯 차례를 순행했다.”

“천하의 근심은 늘 북쪽 오랑캐에 있었다. 강희제 때부터 열하에 행궁을 짓고 몽골의 강력한 군대를 유숙시켰다. 오랑캐로 오랑캐를 대비하는 것이다. 군사비를 덜고 변방이 튼튼해져, 이제 황제가 몸소 머물러 통솔하고 지킨다. 서번(西藩·티베트족)은 강하고 사나우나 황교(黃敎·라마교 일파)를 매우 경외하니, 황제가 그 풍속을 따라 황교를 떠받들고 그 법사를 맞이해 왕의 이름을 주어 세력을 분할했다. 이것이 청나라 사람이 사방을 통제하는 전략이다.”

청 황제는 유난히 주자와 그의 학문을 높였다. 주자는 중국을 높이고 오랑캐를 배척한 인물인데도 말이다. “중국의 대세를 살펴 이를 먼저 차지하고 천하의 입에 재갈을 물려 감히 자신들을 오랑캐라 부르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천하 사대부의 목에 올라 타 목구멍을 누르고 등을 어루만지려는” 고도의 문화정책이었다.

“진나라처럼 유학자를 파묻어 죽이지 않고 도서 교정 사업에 골몰하게 하고, 진나라처럼 책을 불사르지 않고 취진국(聚珍局·<사고전서>를 편찬하는 기구)에 흩어지게 했다. 오호! 그들이 천하를 우롱하는 술책이 교묘하고도 깊다 하겠다. 이른바 책을 구입하는 재앙이 책을 불사르는 것보다 심하다는 것이 바로 이를 가리키는 것이다.”

박지원은 <열하일기>에 실린 ‘요술구경’ (출처 : 경향DB)


연암은 ‘심세편’에서 충고했다. 후일 중국을 여행하다가 주자를 반박하는 중국인을 만나면, 발끈하여 이단이라고 배척하지 말고 천하의 대세를 엿볼 수 있는 기회로 삼으라는 것이다. 뜻있는 중국 선비가 주자를 통한 통제책에 격분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주자만 좇는 조선 사람의 교조주의를 꼬집는 것이기도 했다.

미국은 한국에 사드(THAAD)를 배치하려 한다. 대중국 전략의 일환이다. 최근 국무부 웬디 셔먼의 발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한편 중국은 AIIB를 설립해 협력자를 규합하려 한다. 미국 금융패권에 대한 도전이다. 세계질서는 한 패권국 중심의 동심원적 구조가 아니다. 또한 어느 패권국도 협력자가 필요하다. 천하대세를 잘 살펴 우리의 선택 여지를 확대하고 있는가.


김태희 | 다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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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