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시대에 양포(楊布)라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흰옷을 입고 외출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양포는 흰옷에 흙탕물이 튈까 봐 여벌로 갖고 있던 검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런데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집에서 기르는 개가 주인도 몰라보고 마구 짖는 것이었다. 주인이 집을 나갈 때는 분명 흰옷을 입었는데, 집에 돌아온 사람은 검은 옷을 입었으니 주인이 아니라고 여긴 모양이다. 양포는 주인도 몰라본다고 화를 내며 개를 때리려고 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양포의 형 양주(楊朱)가 말했다.

“때리지 마라. 너도 마찬가지다. 네 개가 흰 털로 나갔다가 검은 털로 돌아오면 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느냐.”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이야기다. 양포의 개 이야기는 외면과 본질의 간격을 지적한다. 흰옷을 입은 사람이 검은 옷으로 갈아입어도, 흰둥개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검둥개로 바뀌어도, 그것은 같은 사람이고 같은 개다. 겉모습이 바뀌었으니 내용물도 바뀌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외모가 바뀌었으니 성격도 바뀌었을 거라는 생각도 착각이고, 포장이 바뀌었으니 품질도 바뀌었을 거라는 생각도 착각이다. 대통령이 바뀌었으니 모든 게 바뀌었을 거라는 생각 역시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난리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가장 큰 원인은 경제다. 경기는 여전히 침체 상태이고 고용은 여전히 늘지 않는데 집값은 폭등하고 있다. 뭔가 크게 바뀔 거라고 기대했는데 바뀐 게 없는 것 같으니 실망하는 게 당연하다. 이때를 놓칠세라 야권은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에 책임을 돌린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이다. 경제전문가들도 갑론을박을 벌이는 문제이니, 과연 그런지는 알 수 없다. 설령 그렇다 해도 과거로 돌아간다고 상황이 나아질지도 의문이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경제개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며 더욱 과감한 개혁을 주문하고 있다. 정부는 조만간 효과가 나타난다는 입장이니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실제로 나아지는지 통계만 나아지는지 역시 그때 가서 따지면 된다.

 

경제개혁은 이제 겨우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니 그렇다 치자. 정부가 집권 초기부터 호언장담한 적폐청산도 더디기만 하다. 사법개혁도 정치개혁도 전부 제자리걸음이다. 반발이 심한 탓이리라. 수십년간 켜켜이 쌓인 적폐가 하루아침에 기꺼이 사라져 주겠는가. 지난 정부처럼 국정원이 댓글 달고 기무사가 사찰하고 문체부가 블랙리스트를 작성해서 적폐청산에 몰두하면 속도가 붙겠지만, 그런 방법은 청산한 적폐의 빈자리에 또 다른 적폐를 쌓을 뿐이다. 적폐청산은 오로지 합법적, 민주적 절차에 의해서만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절차를 따르려면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정부 출범 이후 16개월이 지났을 뿐이다. 이 역시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볼 일이다.

 

그렇지만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문제가 하나 있다. 안전문제다.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를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안전을 위한 노력을 다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법이다. 인재(人災)가 없으면 천재(天災)는 걱정할 것이 못 된다. 그러나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고를 보면 정부가 4년 전 세월호 참사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그중에서도 상도동 유치원 건물 붕괴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인재였다. 붕괴 조짐은 일찌감치 나타났다. 그러나 전문가의 경고도 무시했고 학부모의 민원도 소용없었다. 관할 구청은 현장점검도 나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조처한 것처럼 허위공문서를 작성한 혐의까지 받고 있다. 모두 비용과 책임만 걱정할 뿐 안전을 걱정하지는 않는다. 만성적인 안전불감증이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다.

 

담당 공무원만 탓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안전문제를 제기해도 번번이 미온적인 대응에 그치는 이유는 원인을 몰라서도 아니고 바로잡을 의지가 없어서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행정 일선에서는 이해관계자들의 민원 때문에 정당한 법 집행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책임이 있다면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겠지만,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끝낸다면 똑같은 사태를 피할 수 없다. 안전문제에 한해서는 신속하고 과감하게 조처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 차원의 대대적이고 구조적인 개혁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모든 행위에는 필연적인 결과가 있다. 안전불감증의 필연적인 결과는 참사다. 필연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면 그것은 요행이다. 참사를 피한 건 순전히 요행이었다. 요행은 반복되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 채 요행에 기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대통령이 바뀌었으니 모든 것이 바뀌었을 거라는 안일한 착각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지금도 아이들은 보육시설에서 맞아 죽고, 통학차량에 갇혀 죽고, 스쿨존에서 치여 죽고 있다. 건물이 무너져 깔려 죽었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은 아직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무너진 유치원 건물은 말하고 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역사와 현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0) 2018.09.13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0) 2018.09.06
번역의 힘  (0) 2018.08.30
아버지의 위기인가  (0) 2018.08.23
표창원 의원님께  (0) 2018.08.16
조선왕조실록 ‘졸기(卒記)’  (0) 2018.08.09
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