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9월, 경주시 노서리의 한 민가에서 공사 중 구슬이 발견됐다. 조선총독부는 인접한 ‘노서리 제128호분 발굴에 들어갔다. 결과는 놀라웠다. 금빛 찬란한 금관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금관총’ 발굴이다. 일제는 1924년과 1926년에도 각각 ‘금령총 금관’ ‘서봉총 금관’을 발굴했다. 금관은 1970년대 천마총과 황남대총에서도 나왔다. 지금까지 확인된 신라금관은 발굴 유물 5점과 도굴품으로 압수된 ‘교동 금관’ 등 모두 6점이다.


신라의 황금유물은 금관 말고도 귀걸이, 목걸이, 팔찌, 반지, 허리띠, 그릇, 신발 등 다양하다. 일본이 신라를 ‘눈부신 황금의 나라’(<일본서기>)라고 불렀던 사정을 이해할 만하다. 신라는 어떻게 다양한 황금 유물을 제작해 사용했을까. 금이 많이 채굴된 게 원인일 수 있다. 일제강점기 봉화, 상주 등 경북에는 20여개의 금광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고구려·백제에 없는 금관 제작을 설명할 수는 없다. 또 금관의 용도가 무엇인지, 사용자가 누구였는지도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신라 금관의 유래를 밝히는 일은 오랜 숙제였다. 신라 금관은 아래쪽에 둥근 관테를 둘렀고, 위로 ‘출(出)’ 자 모양의 가지와 사슴뿔 모양의 장식을 세웠다. 이는 자작나무와 사슴으로 꾸민 흑해 연안의 사르마트족 금관이나 아프가니스탄의 틸리아 테페 금관과 닮았다. 중앙아시아 연원설의 근거다. 그러나 ‘출’ 자 장식이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 신화를 상징한다는 토착문화의 산물이라는 등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1969년 카자흐스탄 이식 지역의 고분에서 기원전 4~3세기의 유물인 ‘황금인간’이 발굴됐다. 왕자로 추정되는 시신을 순금제 장식이 뒤덮고 있었다. 관모, 상의, 허리띠, 신발 모두가 순금 제품이었다. 관모를 장식한 나무는 영락없는 ‘출(出)’ 자 모양이다. 학계는 이 유물이 신라 금관과의 연관성을 밝히는 단서가 될 것으로 주목한다. 카자흐스탄의 국보 ‘황금인간’이 ‘황금인간의 땅, 카자흐스탄’ 특별전(국립중앙박물관, 2월24일까지)에서 관람객을 맞고 있다. 국호 ‘신라’는 ‘덕업이 날로 새로워지고 사방을 망라한다(德業日新 網羅四方)’에서 따왔다고 한다. 카자흐스탄 문화와 우리 역사를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전시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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