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사후세계에 대해 상상해보곤 한다. 모든 사람이 한번쯤은 사후의 운명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프랑스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영화의 원제목인 <완전히 새로운 성경(Le tout nouveau testament)>이 영화의 내용과 핵심을 더 잘 전달해주는 것 같다]는 죽음과 사후세계가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코믹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유럽 브뤼셀의 한 아파트에 사는 신은 아내와 자식들에게 걸핏하면 소리 지르고 인간을 괴롭히면서 즐거워하는, 한마디로 심술맞은 고약한 성격의 절대자이다. 아들인 예수는 이러한 아버지 신에 반기를 들고 가출해버렸고, 현명한 딸인 에아는 새로운 신약성서를 쓰기 위해 6명의 사도를 찾아 나선다. 영화 최고의 장면은 에아가 아버지의 컴퓨터에 몰래 들어가 지상의 인간들에게 남은 수명을 문자로 전송하는 것이다. 즉 에아가 아버지의 전지전능한 힘의 원천인 인간의 죽음의 비밀을 봉인 해제한 것이었다.

 

영화는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유머러스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일상의 삶에서 죽음과 사후세계는 때론 현실보다 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사후세계는 현세의 삶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중세와 근대 유럽 예술품의 대부분이 사후세계를 그렸다는 점에서도 잘 확인된다. 특히 근대의 탄생기로 간주되는 르네상스 시기에는 최후의 심판 그림이 늘어났다. 무시무시한 지옥도는 인간들에게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한 공포를 시각적으로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오래전에 베네치아 토르첼로섬에 있는 성당 벽면에 그려진 지옥도를 본 적이 있는데, 현대에 살고 있는 나조차도 서늘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중세 유럽에서 죽음과 지옥의 공포에 짓눌려 떨고 있었던 인간들에게 한 줄기 빛이 찾아왔다. 영화 속의 에아가 아버지의 절대권력의 원천인 생명 시간을 인간들에게 전송한 것처럼 중세 유럽은 새로운 사후세계의 지도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바로 연옥이라 불리는 새로운 공간의 탄생이었다. 연옥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유럽 기독교인들은 사후세계를 지옥과 천국으로만 구분하고 있었다. 신을 믿고 선행을 한 사람은 천국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행이었다. 이러한 구도하에서는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은 영원히 구제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연옥이 생기면서 희망의 가능성이 열렸다. 연옥은 불로써 자신의 죄를 정화하고 최종적으로는 천국으로 갈 수 있는 중간 단계의 공간이었다. 전적으로 의로운 사람은 바로 천국으로 가겠지만 가벼운 죄인들은 연옥으로 가서 불로 죄를 씻고 종국에는 구원받을 수 있었다. 당시 교회가 모든 죄를 유발시키는 원인이라고 생각했던 교만, 질투, 분노, 음욕, 탐식, 탐욕, 나태 등을 칠죄종으로 규정하고 있었는데 현실의 삶에서 이러한 죄를 한 번도 범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보통 사람들에게 연옥은 희망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프랑스 역사가 자크 르 고프는 <연옥의 탄생>이라는 책에서 12세기에 연옥이라는 개념이 형성되기 시작했음을 상세히 밝혀냈다. 중세 최고의 연옥 설계자는 단연코 단테였고, 그는 자신의 작품 <신곡>에서 연옥을 환상적으로 표현했다. 단테의 연옥은 일곱 개의 원반이 포개져 정상으로 갈수록 원의 반경이 줄어들고, 각 원에서는 죄인들이 순서대로 교만, 시기,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음욕의 죄를 씻는다. 단테가 시의 언어로 묘사한 연옥은 여러 화가들에 의해 그림으로 재탄생했다. 그 결과 중세 후반 유럽 기독교인들에게 연옥은 구체적인 이미지를 지닌 실재하는 공간이 되었다. 

 

여러 면에서 연옥은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이 기발한 사후 공간은 교회에 엄청난 부를 안겨주기도 했다. 연옥에서 고생하는 불쌍한 망자들을 위해 살아있는 사람의 노력이 중요했고 산 자의 기도와 봉헌 여하에 따라 연옥 수감 기간이 달라질 수 있었다. 이러한 산 자들의 기도와 봉헌을 중재하는 것이 바로 교회였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 중의 하나가 교회가 발행하는 면벌부를 구입하는 것이었다. 이제 교회는 산 자뿐만 아니라 죽은 자들에 대해서도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16세기 초 교황청이 바티칸 대성당 재건 사업을 위해 면벌부를 남발하고 루터가 면벌부와 그와 연관된 연옥 신앙을 부정하면서 종교개혁이 일어났지만 연옥과 면벌부는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손쉽게 구원을 확보할 수 있는 편리한 방편이기도 했을 것이다.

 

오랜 역사에서 인간의 과학 지식은 무한히 증가했지만 사후세계에 대한 지식은 티끌만큼도 발전하지 않았다. 그래서 과학이 아니라 여러 종교들에서 계속해서 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설명이 맞을까? 아니면 모두 틀린 것은 아닐까? 사후세계에 대한 성찰은 현실과 동떨어진 문제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알 수 없는 사후세계가 현실의 삶을 규정하고 제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후세계의 지도를 어떻게 상상하느냐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때론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에 떨지 말고 오늘을 즐기라(Carpe diem)는 고대 현자들의 조언을 따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남종국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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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