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제자인 자유(子游)가 무성(武城)이라는 작은 고을을 다스리고 있을 때였다. 공자가 이 고을을 방문했다. 고을에서 거문고와 노랫소리가 들렸다. 공자가 빙그레 웃었다. 제자가 자신의 가르침대로 고을에서 예악(禮樂)에 의한 교화(敎化)를 펴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흡족했던 것이다. 그러나 불쑥 말했다.

“닭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느냐?(割鷄焉用牛刀)”

자유가 대답했다.

“전에 선생님께서 ‘군자(君子)가 도(道)를 배우면 사람을 아끼고, 소인(小人)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 쉽다’고 말씀하신 것을 제가 들었습니다.”

진지한 답변에 공자가 주위의 제자들에게 말했다.

“자유의 말이 옳다. 내가 한 말은 농담이었느니라.”

제자가 자신의 가르침을 잘 새기고 실천하는 것에 공자가 흐뭇해하는 모습이 선하다. 큰 재능이 작은 데 쓰일 때의 아쉬움도 느껴진다. <논어>의 ‘양화(陽貨)’편에 나오는 ‘우도할계(牛刀割鷄)’의 고사이다.

그러나 칼이 형벌이나 강제력의 의미로 쓰일 때는 사정이 판이해진다. 대포로 참새를 잡는 것과 같은 과도한 조치를 의미한다. 이를 법에서는 ‘과잉금지의 원칙’ 또는 ‘비례성의 원칙’에 의해 금지한다. 즉 기본권을 제한하는 입법이나 권력행사는, 첫째, 목적이 정당하고, 둘째, 수단이 그 목적에 적합해야 하며, 셋째, 다른 대안이 없을 때만 행사해야 하며, 넷째, 행사할 때에도 최소한의 제한에 그쳐야 한다.

과잉금지를 위한 심사를 네 단계나 나눈 것은 그만큼 신중한 ‘저울질’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80년대 행정기관에서도 권력의 과잉남용의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출처 : 경향DB)


그동안 헌법재판소의 재판에서 과잉금지의 원칙은 중요한 기능을 했다. 이번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에서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다수 의견과 소수 의견 모두 이 원칙을 적용했지만 그 결론은 달랐다. 어느 재판관의 저울질이 더 적절했을까. 판결문은 역사적 문건이 되어 헌법적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

인간사에서 균형이란 고정불변으로 주어진다기보다 끊임없는 저울질에 의해 얻는다. 갑과 을, 여와 야가 서로 뒤바뀔 가능성과 제3의 견제장치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도 이를 위해서다. 이런 장치가 없으면 불균형은 더욱 심화되는 경향이 있다. 결국 평형수를 뺀 세월호처럼 완전히 기울고서야 멈출 것이다.

우도할계, 공자 마을의 농담은 꿈만 같고, 칼이 어지럽다. 민생의 요구엔 이념만 나부낀다.


김태희 실학네트워크21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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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