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장수가 중요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 비록 한국 축구대표팀이 우승은 못했지만 매우 인상적이었다. 왜 같은 선수인데도 감독에 따라 그토록 달라질까. 어느 감독 아래선 기대했던 스타가 실망스러운 플레이를 하는가 하면, 어느 감독 아래선 신예가 등장하고 베테랑도 다시 뜬다.

나라 간 각축이 치열했던 중국 전국시대에도 그랬다. 같은 조나라 병사이건만 조사나 염파가 이끌면 승리의 군대였고, 조괄이 이끌었을 때는 패전의 군대가 되었다. 좋은 장수를 얻는 것이 승패의 관건이었다.

연나라 소왕이 제나라의 공격으로 망할 지경에 즉위했다. 인재를 모아야만 했다. 곽외에게 그 방책을 물었다. “왕께서 인재를 부르고 싶으면 먼저 저 곽외부터 시작하십시오(先從외始). 저보다 현명한 인재들이 어찌 천리길을 멀다 하겠습니까?”

과연 그랬다. 곽외에 대한 예우는 인재 중용의 증거였다. 현명하고 용병술이 뛰어난 악의(樂毅)도 마음이 움직였다. 악의는 연나라 소왕을 찾았고, 소왕은 악의를 극진히 예우하고 관직을 주었다.

드디어 악의는 다섯 나라 연합을 성사시킨 후, 연합군을 이끌고 제나라 공략에 나섰다. 공략 5년 만에 제나라의 70여개 성을 함락했다. 다만 거(거)와 즉묵(卽墨) 두 지역만 함락하지 못했다. 즉묵에서는 병법에 재능을 보인 전단(田單)이 장수로 추대되었다.

하필 이때 연나라 소왕이 죽고 그 아들 혜왕(惠王)이 즉위했다. 새로운 왕은 악의를 좋아하지 않았다. 혜왕은 장수를 악의에서 기겁으로 교체했다. 악의는 돌아가면 죽임을 당할까 우려했다. 연나라로 돌아가는 대신 조나라로 투항했다. 전단의 제나라 군사는 반격을 가해 기겁의 연나라 군대를 격파했다. 연나라는 얻은 걸 모두 다시 빼앗겼다.

연나라 혜왕은 후회했다. 악의에게 사람을 보내 사과하면서 돌아올 것을 호소했다. 악의가 답장을 보내, 선왕의 각별한 배려로 공을 세우게 된 경위를 절절히 설명했다. <사기>에 소개된 답장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저는 ‘현명한 군주는 사적으로 친하다 해서 녹봉을 주지 않고, 공이 많은 자에게 상을 주며, 능력이 맞는 자에게 일을 맡긴다(其功多者賞之, 其能當者處之)’고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능력을 살펴 관직을 주는 군주야말로 성공할 수 있으며, 행실을 따져 교분을 맺는 선비야말로 이름을 세울 수 있습니다.

금의환향한 축구대표팀 (출처 : 경향DB)


1년 새 축구대표팀 감독이 바뀌니 팀이 달라졌다. 역시 장수가 중요하다. 어디 스포츠뿐이랴. 외면당하고 있는 정치권이야말로 인재 구하기에 나설 때다.


김태희 | 실학21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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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