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이 넘친다. 18세기에도 그랬다. 담헌 홍대용은 “옛날에는 책이 없어도 영웅과 어진 사람이 많이 나왔는데, 지금은 책이 많아도 인재가 날로 줄어든다”고 한탄했다. 당시에 백과전서 형식의 책들이 유행처럼 등장했던 것도 많은 지식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오늘날 백과사전은 해법이 아니다. 공간도 많이 차지하고 금방 헌 지식더미가 되어버린다. 지식의 수명이 너무 짧아져버렸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때그때 필요한 지식을 인터넷 공간에서 찾아 쓰면 된다. 문제는 인터넷 공간의 지식이 바로 내 지식은 아니라는 점이다. 세상의 지식은 많고 넓어졌지만 내가 아는 지식은 적거나 좁다. 세상은 열려 있지만 얕은 지식을 기초로 편견을 강화하는 지식만 찾아 편식한다. 또 소모적 지식만 뒤쫓느라 소일하기도 한다.

대학자 다산 정약용의 대처법은 어땠을까. “옛날에는 책이 많지 않아 책을 읽고 외우는 데 힘썼다. 오늘날에는 책이 너무 많아 어찌 책마다 읽고 외우겠는가? 주역·서경·시경·예기·논어·맹자 등은 마땅히 숙독(熟讀)하여야 한다. 강구(講究)하고 고찰하여 그 정밀한 뜻을 얻고, 생각하는 바는 바로 차록(箚錄·간략한 기록)해야 실질적인 얻음이 있다. 그저 줄곧 소리 내어 읽기만 해서는 실질적인 얻음이 없다.”

주역·서경·논어 등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을 목표로 하는 유학 경전이다. 오늘날로 치면 고전이 이에 해당할 수 있다. 고전이란 오랜 세월을 거쳐서도 가치를 잃지 않는 책이다. 동서고금 인간의 공통적 고민거리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재음미하게 하는 이야기와 주제들을 담고 있다. 연암 박지원이 <초정집서>에서 “하늘과 땅은 비록 오래되었어도 끊임없이 새것을 낳고, 해와 달은 비록 오래되었어도 그 빛은 날마다 새롭다”고 했는데, 바로 고전이 그렇다.

다산은 또 말했다. “독서에는 방법이 있다. 무릇 세상에 무익한 책은 구름 가듯 물 흐르듯 읽어도 되지만, 사람과 나라에 도움이 되는 책이라면 문단마다 이해하고 구절마다 탐구하면서 읽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의 독서법. 선택 기준은 실용성이었다.


근대 분과학문인 인문학은 위기인데, 대학 밖 인문학은 열기가 높다. 취업 인문학, 돈 되는 인문학, 힐링 인문학 등 혼란스럽다. 유행이요, 쏠림현상일지 모른다. 그러나 강연장 청중들은 진지하다.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인문학적 문제의식인가, 지식에 대한 욕구인가. 지식은 넘치는데 내 지식은 빈곤해질 수 있는 상황. 지식에 대해 좀 더 지혜로워져야겠다.


김태희 | 다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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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x2.0